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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4>농을 품고 사랑하고 아파하다-⑥내 생애 최초의 농가 조사연구가 된 ‘독농가 연구사업’
   
 

우농(愚農) 최양부

우연히 맡게 된 독농가 조사연구 사업은 송암 김동희 교수님과의 운명적 만남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송암 선생의 권유로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고 농업경제연구자의 길을 걷게 했다. 대학 졸업 후 학문연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1965년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대학 행정실 학생과 직원으로부터 수원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 기회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던 터라 곧바로 연락하고 한 학생의 부모를 만났다. 그분들은 중학교 2학년생인 셋째 아들의 학교성적이 좋지 않지만 내 후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싶다면서 아들을 맡아 달라고 했다. 학생의 성적이 낮아 부담은 있었지만 입주해서 가르친다는 조건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일거에 숙식과 생활비를 해결하고 기차통학 생활도 마감할 수 있어서 나는 제안을 수락하고 그 댁에 입주하면서 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학생의 실력은 예상보다 더 못했지만 1년 계획을 세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방식으로 학생 지도를 시작한 후 다행히 성적이 올라갔고 1967학년도 입시에서 배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는 고맙다며 계속해서 그 학생 동생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런 연유로 1967년 4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3·4학년 대학 생활을 여유롭게 하면서 농사단(NSD)를 비롯한 학생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66년 3학년 1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우연히 내 생애 최초의 농가 조사연구사업 책임을 맡게 된다. 어느 날 학생회 산하 단체인 ‘독농가(篤農家)연구회’ 회장이 나를 찾아왔다. 독농가란 ‘농사를 열심히 잘 짓는 모범농가’로 새로운 영농기술과 합리적인 영농방식으로 다른 농가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앞서가는 농가를 지칭한다. 독농가연구회는 독농가를 연구하는 학생단체로 회장은 수의학과 학생이었다.

연구회장은 문교부로부터 ‘1966학년도 학생향토개발연구비’를 지원받아 ‘전국 독농가들의 영농방식과 그들이 그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란 조사연구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 사업의 연구책임을 나더러 맡아달라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는 연구의 성격상 수의학과생인 자신이 감당하기가 어려워 연구책임자로 농경제학과생을 수소문하던 중 내가 적임자라는 회원들의 추천이 많아 찾아왔다며 연구책임을 맡아달라고 했다. 우연한 제안이었지만 농가 조사를 통해 농가 경제 현실을 상세하게 공부하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 때문에 나는 1966년 대학 3학년 전 기간을 독농가 조사연구 사업을 위해 바쳐야 했다.

독농가 연구 사업은 농촌조사연구 방법론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1단계는 여름방학 시작 전까지 조사목적과 내용을 정리하고, 조사대상 농가 선정, 조사표 작성, 조사원 선발 및 사전교육 등 조사준비를 마치는 것이었다. 2단계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조사대상 독농가를 직접 방문해 조사하고, 3단계는 조사된 조사표를 정리 집계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 시한인 12월 말까지 제출하는 것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모든 과정이 재미있어 힘든 줄 모르고 일에 빠졌다. 연구회 지도교수인 표현구 농학과 교수를 비롯한 농경제학과 박진환 교수, 김상기 대학원 선배로부터 농업경영에 대한 지도를 받았고, 농촌사회학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김동희 농촌진흥청 농업경영과장을 연구회에 초청하여 농가 조사방법에 대한 세미나를 하고 김 과장의 개인 지도를 받으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독농가 조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농가는 누구이며 조사를 통해 그들의 무엇을, 왜 알고자 하는지’ 독농가 조사연구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연구회 회원들과 같이 독농가에 대한 신문기사를 모으고 관련 자료를 찾는 한편, 여러 차례 토론을 거쳐 조사 연구목적과 조사 내용을 정리한 후 조사표 초안을 작성했다. 조사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농대 부근 농가를 방문하여 조사한 예비조사를 토대로 수정을 거쳐 최종 조사표를 만들었다. 독농가 회원들과 같이 도별로 대표적인 조사대상 독농가를 수집하여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등 6개 도에서 각각 2∼3호씩 총 16호 조사대상 농가를 선정했다.

여름방학 동안 조사 참가를 자원하는 연구회 회원 21명을 선정하여 3명을 1개 조로 7개 조사팀을 편성하고, 조별로 2∼3호씩 심층적인 면접조사를 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조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표와 조사방법을 사전교육하고 방학을 맞아 일제히 농가 방문조사를 했다. 나와 연구회장은 조사지역을 돌며 회원들의 조사 활동을 도왔다. 개학과 함께 조사표를 제출받아 회원들의 도움으로 조사 항목별로 조사결과를 정리하고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기한인 12월 24일까지 문교부에 제출하면서 사업을 마무리했고 보고서에 대해 좋은 평가도 받았다.

돌이켜 보면 우연히 맡게 된 독농가 조사연구 사업은 내 생애 최초의 농가 조사연구 사업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송암 김동희(松巖 金東熙, 1928~2010) 교수님과의 운명적 만남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송암 선생의 권유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고 농업경제연구자의 길을 걷게 했다. 대학 졸업 후 학문연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인생은 연속되는 우연의 삶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우연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한 일생일대 (一生一大)의 도전의 기회가 몇 차례는 찾아온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도전의 기회에 어떻게 대응하고, 누구를 만나 어떠한 도움을 받느냐가 인생의 길을 바꿀 수도 있다. 바로 독농가 조사연구가 나에게 그랬다. 독농가 연구는 내가 우연히 마주한 도전의 기회였고 나는 그 기회를 붙잡아 최선을 다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우연을 불러왔고 내 인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의 길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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