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농림수산부 장관자문관 자격으로 내가 UR 농업협상 정부대표단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나도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UR 농업협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란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UR 농업협상 업무를 담당해온 연구원 관계자들은 특히 ‘불편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내가 UR 농업협상 정부대표단에 합류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농림수산부는 1986년 9월 UR 농업협상 출범 이후 제때 정리하지 않고 쌓아둔 UR 협상문서의 신속한 번역 등을 위해 몇몇 대학교수(성진근, 김완배, 강봉순 등)와 연구원 관계자들(이재옥, 최세균, 김한호, 서진교, 김동민, 권오복 등)로 협상지원팀을 구성 운영했다. 교수들은 정부 관계자들과 같이 UR 협상 문건 등을 정리하고 대응방안을 검토하며 정부대표단 자문자격으로 UR 협상에 참여도 했다. 그런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UR 농업협상에 관한 KBS 1TV 심야 토론에서 패널로 참여한 김성훈 교수(중앙대)가 ‘대외비’로 되어있는 UR 협상 문건 내용을 공개하면서 조일호 농림수산부 농업정책국장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UR 협상지원팀에 속한 교수들이 ‘대외비 문서’를 김 교수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원팀과 정부가 갈등을 빚게 되었고 결국 교수들의 UR 협상 지원 참여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무렵 내가 연구원 부원장이 되자 정부는 연구원을 중심으로 협상지원팀을 새로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주제네바대표부 이상옥 대사가 1990년 12월 브뤼셀 장관회의를 앞두고 UR 농업협상팀 보강을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협상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정부 대표 가운데 전문가 한 사람을 협상 대표단에 고정 배치할 것을 건의했는데, 농림수산부 관계자들이 UR 농업협상장(場)에서 정부대표단 ‘입’ 역할을 할 사람을 찾다가 나를 장관에게 추천했다.

1986년 9월에 시작되어 4년여를 끌고 있는 UR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GATT는 12월 3일부터 7일까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통상장관회의개최를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브뤼셀 장관회의 준비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회의 참석 등을 위해 1990년 10월 27일 제네바로 갔다. 브뤼셀 장관회의가 끝나는 12월 초까지 40여 일간의 장기 출장이었다. 김한호 연구원이 수행했다. 제네바 도착 후 주제네바대표부 사무실에 자리를 마련하고 UR 농업협상 동향과 쟁점 등을 정리하는 한편 브뤼셀 장관회의 전망 등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 우리의 대응 논리 등을 정리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UR 농업협상 관련 문건들을 검토하고 묵은 신문기사들을 정리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38개국 대표가 참석하는 농업협상위원회에도 처음으로 한국 대표로 협상테이블에 앉아 첫 발언을 하는 등 공식 업무도 시작했다. 협상장에서 첫 발언을 한 날 회의가 끝나자 일본, 이스라엘 대표 등이 악수를 청하고 나의 협상 데뷔를 ‘새로운 스타 탄생(A New Star is Born)’이라고 축하해 주며 앞으로의 협력을 약속했다.

11월 1∼2일 일정으로 조경식 장관이 GATT를 방문했다. 나는 조 장관에게 UR 협상 동향과 전망을 보고하고 예정된 던켈 GATT 사무총장과 드쥬 의장 방문 시 언급해야 주요 영문 발언 요지를 정리한 자료를 드렸다. 조 장관은 발언 요지를 꼼꼼히 살핀 다음 특히 본인이 해야 할 발언은 암기하며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 장관은 던켈 총장과 드쥬 의장을 만나 우리 농민과 농업의 어려운 현실과 쌀 등 15개 민감 품목에 대한 시장개방 예외인정 등 우리나라 입장을 전했다. 그러자 던켈 총장과 드쥬 의장은 한국이 세계 13대 무역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예외인정은 어렵다고 했다. 조 장관은 15개 품목의 시장개방 예외를 주장하는 것이 무리라는 일부 국내언론에 대해 ‘일본은 쌀 등 9개 품목, 캐나다는 닭고기, 유제품 등 4개 품목을 개방 예외로 요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다소는 무리고 억지 같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우리 농업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정부 전체의 견해도 같다’라고 했다. 솔직히 GATT 분위기는 15개 품목은 고사하고 쌀 하나도 시장개방원칙에서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네바에는 긴장의 날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11월 6일 UR 협상 반대 의사를 전하기 위해 한국농민대표단 (단장 강춘성)이 GATT를 방문했다. 나는 그들의 통역 겸 안내를 맡았다. 대표단 일행이 GATT 사무실을 방문하고 GATT를 나서려는 순간 이경해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이 할복자살을 시도했다. 이 회장은 GATT 현관 복도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중인 농무관과 같이 이 회장을 신속히 도착한 구급차에 싣고 GATT와 가까운 곳에 있는 적십자 병원으로 향했다. 곧바로 수술이 이루어졌고 담당 의사로부터 다행히 칼끝이 장기들을 건드리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 며칠 후 건강을 회복한 이 회장이 제네바로 달려온 부인과 함께 무사히 귀국했다. 이 회장의 할복 사건은 두고두고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회장이 죽기를 각오하고 UR 농업협상을 반대하며 GATT에 알리려고 했던 우리 농민의 절박한 마음이 뜨겁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농업과 농민을 향해 밀려오는 UR이란 초대형 태풍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 쌀을 어떻게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할 협상 전략은 무엇인가? 그날 이후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고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UR 협상 전략을 수립하는 일은 나에게 주어진 지상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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