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비교우위론을 앞세운 개방정책은 저임 노동력기반 유지를 위한 물가안정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농업부문에 전가하고 농민 희생을 강요하는 매우 불공평한 도시노동자 편향적이고 반 농민적이고 반 농업적 정책이다.


경제기획원은 1979년 1월 발표한 ‘80년대를 향한 새 전략(새 전략)’을 통해 ‘개방체제의 확대에 따른 국제 분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교우위 산업의 선택이 불가피하며 무리한 국산화와 자급을 지양하고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라고 했다. 새 전략은 농산물을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품목은 시장을 개방하고 국제시장에서 교역이 어려운 품목은 국내생산으로 특화하여 농업을 선택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기획원의 개방농정론자들은 우리 농업의 장래를 결정할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의 선택과 결정은 비교우위론이란 경제이론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예를 들어 ‘A는 비교우위가 있다. 또는 국제경쟁력이 없다’라는 말은 A의 경제적 특성, 즉 경제 현상 (사실, fact)에 대한 ‘서술적 정리(descriptive proposition)’로 이 말이 과연 사실(진실)인가가 중요하다. 경제이론은 경제 현상에 대한 사실적 서술이다. 그러나 ‘A 수입을 자유화를 해야 한다’라는 말은 수입이라는 행동을 하려는 ‘규제적이고 처방적 제안(imperative, prescriptive proposal)’으로 경제정책이 여기에 속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 규범적 가치판단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론(사실. is)으로부터 정책(가치판단, ought)을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가? 나는 개방론자의 주장처럼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이 비교우위이론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생겼다. 비교우위론은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차용된 경제이론일 뿐이며 개방론자들이 수입자유화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은 다른 정책목표(혹은 선호함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신고전 경제이론을 믿는 (응용농업)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은 자신들이 제안하는 경제정책은 개인적인 정책목표(나 선호함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경제이론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혹은 연역)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가치판단과는 무관계 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이론으로부터 가치판단을 연역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이 순수하게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의 과학적 객관성과 권위를 빌려 정책의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정치적으로 불편부당하고 가치중립적이란 것을 내보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론으로부터 정책을 도출(연역)할 수 있느냐?’이다.

사실로부터 가치판단을 논리적으로 도출(연역)해 낼 수 있는가는 사실 윤리 철학의 오랜 논쟁 중의 하나였고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사실과 가치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논리적 연역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후 ‘사실(이론)-가치(정책) 이원론’은 윤리 철학의 정설이 되었다. 사실로부터 가치판단의 연역이 가능하다면 그 가치판단으로부터 사실의 도출도 가능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가치판단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논리적으로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정책 이원론’은 정책선택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철학적, 윤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정책의 선택과 결정은 궁극적으로 정책을 선택한 사람의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정책을 말하는 (응용농업)경제학자나 경제관료는 정책선택과 결정에 있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 선호함수, 또는 이념적 지향이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원의 개방농정론자가 주장하는 우리 농업은 비교우위가 없다는 사실판단은 실증연구결과가 아닌 단순히 단기적인 국내외 시장가격 차이만 비교한 것으로 매우 가변적이며 농업개발투자 부족으로 인한 낮은 경쟁력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1970년대 고도압축성장으로 발생한 외환증가에 의한 통화팽창을 막는 한편 수출주도경제의 성장동력인 저임금노동력 기반 유지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저가의 해외 농산물수입을 확대하여 농산물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물가안정이 정책의 주목표였다. 그들은 저임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농업·농촌노동력을 도시산업부문으로 끌어내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규범적 판단과 정책 선호함수에 따라 수입자유화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비교우위론을 앞세운 개방정책은 저임 노동력기반 유지를 위한 물가안정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농업부문에 전가하고 농민 희생을 강요하는 매우 불공평한 도시노동자 편향적이고 반 농민적이고 반 농업적 정책이다. 나는 ‘이론-정책 이원론’에 근거하여 경제정책을 제안하는 경제학자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이 근거하는 윤리적 또는 정치적 선택기준을 밝히고 그것의 사회적 정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농업정책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하여(Toward a Philosophical Foundation for the Science of Agricultural Policy)’라는 제목의 논문을 1979년 9월 캐나다 벤푸에서 열린 제17차 세계농업경제학회에서 발표했다. 연구원 사정으로 학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미주리대학교 해롤드 브라이마이어(Harold F. Breimyer)교수가 대신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발행 영문저널 1979년 11월 2권 2호에 수록) 그해 12월 말에는 ‘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의 논리적 연관성에 대한 소고: 특히 비교우위론과 농산물수입 개방정책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한국농업정책학회지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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