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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8>산업사회의 새 농정을 설계하다-⑫‘농어촌지역종합개발연구단’이 출범하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34년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산업사회 복지농촌건설의 이상을 품고 서울에서 공주로, 강진으로, 청송으로 비포장 길을 지프로 달리며 청춘을 불살랐던 연구원들은 모두가 우리나라 농촌지역개발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성장하였으며 지역개발과 도시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1985년 9월 14일 ‘농어촌지역종합개발연구단’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내 새로운 독립적 사업기구로 출범했다. 연구단은 ‘소득개발실, 사회개발실, 환경개발실, 제도개발실’ 등 4개 연구실과 ‘교육훈련실’을 설치하고, 기획원으로부터 지원받은 특별예산으로 기존에 있는 10여 명의 연구원 외에 20여 명의 연구원을 신규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단은 충남 공주, 전남 강진, 경북 청송지역을 대상으로 한 실험사업추진과 함께 정책개발연구, 계획수립과 집행의 효과적 추진을 위한 중앙과 시군 공무원, 관계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과 전문가 워크숍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우수인재확보였다.

나는 당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농촌발전계획론’를 강의하고 있었다. 강의 도중 연구단 출범 사실을 알리고 학생들의 농촌개발계획에 관한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기존의 농촌개발실 연구원인 이용만, 이정(正)환 책임연구원, 정철모, 정기환, 박성재, 이동필, 오내원, 이영대, 이외에 이광원, 장우환, 민상기, 유승우 연구원 등이 연구과제에 따라 참여했으며, 신규로 환경대학원 학생 등 젊은 피들로 박시현, 김정연, 윤원근, 허장, 이병기, 이정기, 이홍렬, 양정묵, 송해안, 조가옥 등이 연구단에 합류했다. 그들은 지역개발, 사회학, 행정학, 지리학 등을 전공해서 농업경제만 공부한 대다수 연구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연구단은 연구원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나 기존 연구원들과 이론과 접근방식 등의 차이로 소통문제 등 새로운 갈등요인이 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연구단 출범은 1978년 연구원 개원 이후 나와 숙명적 경쟁 관계에 있던 몇몇 선배들을 긴장하게 했다. 그들은 연구단을 ‘최양부 사단’의 탄생으로 보고 경계했다. 그들의 보이지 않은 질시(?)와 견제로 업무추진에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농수산부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당시 농수산부 고위직에 있던 한 인사는 직접 전화를 걸어와 ‘왜 농업연구는 안 하고 내무부 돕는 농촌연구만 하느냐?’며 힐난(詰難)하기도 했다.

연구단 출범 후 착수한 공주, 강진, 청송 3개 지역 계획수립은 과거와는 책임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청송, 공주, 강진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과중한 업무부담보다도 해당 군 직원들과 같이 1987~91년간 개발투자계획을 수립하는 부담이 컸다. 투자를 전제로 한 계획수립이었기 때문에 내용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정확해야 했고, 투자사업의 선정에 지역 특성과 주민개발수요 등을 반영하는 데 신중해야 했고, 투자사업비 추산 등도 합리적이고 타당해야 했다. 연구단은 출범 후 1985년 강진, 공주, 청송군 공무원과 농업진흥공사 직원을 대상으로 농어촌지역 종합개발에 대한 연수교육을 시작으로 1989년 연구단을 해산할 때까지 5년간 교육사업을 했다. 매년 농촌정주생활권론 등 이론적 주제에 대한 전문가 워크숍을 영남대, 경상대, 전남대, 전주대 등과 같이 추진했고, 1986년에는 신규로 경기 파주, 강원 영월, 충북 옥천, 전북 진안, 경남 함양 등 5개 지역에 대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다.

나는 연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들이 맡은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자고 격려했다. 농촌개발 분야별 전문가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누구라도 2∼3년간 한 분야에 집중하면 그 분야 최고 권위자가 될 수 있다며 자신들이 맡은 분야를 붙잡고 문제를 진단하고 본질을 이해하고 최적의 해법을 찾으라며 땀과 열정을 요구했다. 중간 허리 역할을 한 이용만과 벌써 고인이 된 이정환 책임연구원, 정철모(농촌정주체계 설정), 정기환(마을개발), 박시현(지방정부 예산편성체계), 김정연(농촌도로체계 설정), 허장(농어촌의료전달체계 수립), 이영대(농촌교육 개발), 윤원근(지방행정구역 개편), 이병기(교육훈련) 연구원 등등이 정말 개발에 땀 나게 뛰었다. 특히 박시현은 강진군에 1개월간 파견근무를 하면서 군의 예산 흐름을 현장에서 파악했고, 김정연은 자전거로 ‘공주군 우성면’ 전체를 누비며 농민들이 마을에서 농경지와 이웃 마을, 주요 도시로 나가는 농(작업)로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농촌도로를 실측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군도(郡道) 이하 농촌도로망을 체계화했다. 허장은 역시 우리나라 처음으로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현실을 진단하고 기능 강화를 통한 농촌의료개선방안을 수립했다. 농촌정주생활권연구는 나에게도 농촌교육, 의료, 지방행정 등 다양한 농촌문제에 눈을 뜨고 해법을 찾아 고민하게 했다.

34년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산업사회 복지농촌건설의 이상을 품고 서울에서 공주로, 강진으로, 청송으로 비포장 길을 지프(운전기사 정예환)로 달리며 청춘을 불살랐던 연구원들은 모두가 박사학위를 하고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우리나라 농촌지역개발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성장하였으며 지역개발과 도시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그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농촌정주생활권을 토대로 3농(農) 통합적 농촌지역종합개발방식이란 새로운 산업사회 농촌개발패러다임과 전략을 만들고 농촌개발이론과 정책을 세웠고 이를 공유하는 학맥과 학풍(學風)을 만들었다. 이제는 대부분 은퇴하고 현직을 떠났다. 그런데 요즈음 강진과 청송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구절벽으로 미래를 잃고 소멸위기에 처했다는 강진과 청송을 다시 찾아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성찰하며 다가오는 2030 인공지능 시대를 향한 미래 농촌의 새 희망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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