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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10>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무역협상의 최전선에 서다-(9)정부의 쌀 시장개방 협상 목표는 농민에게 무성의하고 안이한 것이라 생각

[한국농어민신문]

우농 최양부

1993년 6월 미국 의회는 정부가 요청한 신속처리기간을 1994년 4월 15일까지로 연장 의결했다. 미국 정부는 신속처리 권한법에 따라 법이 종료되는 1994년 4월 15일로부터 120일 전인 1993년 12월 15일까지 의회에 UR 협정체결 의사와 최종협정문을 통보해야한다. 미국의 신속처리권한은 UR 협상이 늦어도 1993년 12월 15일까지 타결되어야 한다는 협상 시한을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

GATT에서는 1993년 6월 30일 던켈 사무총장이 퇴임하고 7월 1일 서덜랜드 총장이 취임했다. 1993년 8월 31일 서덜랜드 총장은 1993년 12월 15일까지 UR 협상을 마무리 짓고, 1994년 1∼3월 간 협정문에 대한 마지막 손질과 이행계획서 조정을 마치고 1994년 4월 15일 최종의정서 서명을 위한 장관회의를 갖는다는 UR 협정 마무리 일정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은 우리도  쌀 시장개방에 대해 마지막 협상을 위한 국가적 결단을 내려야 하고, 일본과도 2인3각 경기를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993년 7월 7일 일본에서 열린 미국, EU, 일본, 캐나다 4국 협상에서 UR 협상 타결을 위한 마지막 난제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EU와 협상을 타결 지은 미국은 일본의 쌀시장 개방을 압박했다. 일본은 미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일본은 쌀시장을 개방하되 선진국 이행 기간인 6년간 시장개방을 유예하고 같은 기간 내 쌀 최소수입물량을 4%에서 시작 8%까지 허용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한국 차례가 되었다. 일본이 먼저 2인3각 경기를 끝냈으니 우리는 부담 없이 일본과 차별화된 조건에 대해 미국 등과 협상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바라던 바가 현실이 되었고 유리한 협상 환경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했다.

일본이 개방원칙을 수용하되 쌀 시장개방을 6년간 유예키로 한 것은 우리에게는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우리가 농업 개도국 지위만 인정받으면 개도국 이행 기간인 10년간 쌀 시장개방을 유예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협상은 유예기간 동안 쌀 최소수입물량을 얼마로 할 것인가가 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우리도 일본처럼 UR 농업협상의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이란 대원칙에 따라 쌀 시장개방원칙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만은 막겠다’라고 한 국민과 농민과의 약속을 파기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그러나 농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UR 농업협상의 대원칙인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을 거부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는 GATT를 탈퇴하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했다. 국내언론들도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언론들은 일본이 손을 든 마당에 우리만 쌀 시장개방 예외를 외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농민들의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한국의 쌀 시장개방 여부는 국내외 언론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GATT는 12월 1일부터 15일까지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을 종용했다. 정부는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쌀시장 개방 협상에 관한 정부의 협상 방침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여 11월 29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쌀 시장개방원칙을 수용하되 농업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시장개방을 10년간 유예하고, 이 기간 동안 쌀 최소수입물량은 3%에서 5% 수준으로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 짓도록 노력하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 정부 대표가 건의하는 협상목표를 승인하는 것을 추인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이 농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좋은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을 정부대표단에 당부했다. 정부는 12월 1일 허신행 농림수산부 장관을 단장으로 강봉균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 임창렬 (재무부 제2차관보), 박운서 (상공자원부 제1차관보), 김광희 (농수산부 제1차관보), 허승 (주 제네바 대사) 등으로 협상대표단을 구성하고 12월 2일 제네바 현지로 출발한다는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정부가 쌀시장 개방원칙을 수용하는 대신 최소수입물량을 일본의 4∼8%보다 낮은 3∼5% 수준을 협상 목표로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는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화도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990년 브뤼셀 장관회의 이후 4년간 쌀 시장개방을 막기 위해 국내외의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이 상황까지 왔는데 정부가 그동안의 모든 협상 노력을 ‘헛고생’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협상 목표는 지난 4년간 쌀 시장개방에 반대해온 농민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보았다.

더욱이 대통령이 직을 걸고 쌀 시장개방을 막겠다고 한 약속을 파기하는 마당에 정부가 최선을 다하는 협상 의지도 전략도 없어 보였다. 마지막 협상에서 정부가 쌀시장개방원칙 수용을 지렛대로 최소의무수입량을 3∼5%가 아니라 1%대 수준을 얻어내려는 최후의 협상 전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부의 쌀 시장개방 협상 목표는 농민에게 무성의하고 안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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