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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3>세상의 소리를 듣고, 세상에 눈을 뜨다/②4.19학생혁명과 5.16군사쿠데타
   
 

우농(愚農) 최양부

4.19 학생혁명(4월 혁명)은 자유민주주의가 종말에는 이긴다는 이승만의 말이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4월 혁명은 국민 위에 군림하여 인권을 짓밟고,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독재정권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


1960년 4월 19일 오후, 태어나 처음 경험한 반정부 시위와 처음 맛본 최루탄가스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오전 수업 도중 갑자기 학교 교문 쪽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일고생 나오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날 학교는 오전 수업만 했다. 담임 선생님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절대 외출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시내로 뛰쳐나갔다. 광주 도청 앞에서 3.15 부정선거 규탄과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구경하다 결국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6.25전쟁 중에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켜 자신의 대통령 재선에 유리한 대통령직선제 도입을 위해 ‘발췌 개헌’을 획책했고, 1954년에는 3선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꾀했으며, 자유당정부는 이승만을 4선 대통령에,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1960년 3월 15일 대·부통령 선거에서 온갖 부정을 자행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가 마산에서 처음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1일 최류탄이 눈에 박혀 죽은 김주열 고등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마침내는 분노한 국민들의 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4월 19일 경무대(현 청와대)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이승만 하야를 외치던 학생과 시민 183명이 사망하고 6259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5월 29일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선언하는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은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라며 자유민주주의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일관성 없는 정치를 했고, 정치권력 강화와 대통령직 연임을 위해 반자유주의적이고 반민주적 방식으로 국회와 야당 국회의원을 탄압했으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과 학생, 시민단체를 탄압하면서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파괴하고 나라를 ‘닫힌사회’로 만들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반공(산)주의’를 자신의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4.19학생혁명(4월 혁명)은 자유민주주의가 종말에는 이긴다는 이승만의 말이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김일성 일당 독재인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에 맞서 남한에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나라를 세운 그가 독재자 소리를 들으면서 물러난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성숙이며 승리를 의미했다.

4월 혁명은 국민 위에 군림하여 인권을 짓밟고,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독재정권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 4월 혁명이 가져온 ‘민주화의 충격’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영혼과 생명을 불어넣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가 살아서 역사하고 있는 조항임을 새삼 국민에게 일깨워 주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4월 혁명은 중3인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나로 하여금 ‘자유와 민주주의, 독재와 정치권력, 그리고 학생혁명‘이라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세상에 눈을 뜨게 하였다.

4월 혁명의 피의 대가로 대한민국 최초로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1955년 당시 민주국민당(김성수,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유진산, 김영삼 등 ‘구파’)과 흥사단, 사사오입 개헌파동 이후 자유당 탈당파 등 반 이승만 세력(장면, 이철승, 정일형, 김대중 등 ‘신파’)의 통합으로 결성된 전통야당이다.

민주국민당은 1949년 기존의 한국민주당이 확대 개편된 당이며, 한국민주당은 1945년에 창당되어 해방정국에서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했으나 정부출범 후에는 정치적 노선갈등으로 결별하고 이승만 정부를 감시, 견제하고 비판하는 대한민국 민주화세력의 근원이 된 민주정당이다.

1960년 6월 15일 민주당은 정치민주화를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을 상징적 국가원수로 하되 국회가 선출하고, 행정수반인 국무총리는 국회 다수당이 지명하는 사람이 되고, 국회는 민·참의원 양원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당시 새 헌법에 따라 국회는 8월 12일 윤보선(구파)을 대통령에, 8월 18일 장면(신파)을 국무총리에 선출하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와 장면내각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운영원칙인 대화와 토론, 협상으로 국정을 이끌기보다는 신·구파로 갈라져 계파(파벌)정치에 빠져 국정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능과 분열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다.

급기야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민주당 정부는 집권 8개월 만에 무너졌다.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군부세력은 무력으로 헌정을 중단시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국민들은 4월 혁명이 세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못했고 이를 되찾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또다시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동을 보았고, ‘역사에는 항상 전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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