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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5>농업경제학에 뜻을 세우고 길을 찾아 나서다-⑦ ‘농업경제학은 어떠한 성격의 학문인가?’
   

우농(愚農) 최양부

김준보 교수는 “농업경제학이란 일반경제학과 달리 화려한 학문이 아니다. 농업경제는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챙겨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수 있다”라며 “현장이 선생이다. 현장에서 배워라”라고 강조했다.


1970년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농가는 어떠한 성격의 경제인가?’라는 농가 경제에 대한 학문적 의문을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전통적 소농(小農)경제’란 어떤 경제인지 개념정리를 위해 1967년도에 출판된 벽제 김준보(碧齋 金俊輔, 1915-2007) 교수님의 “농업경제학 서설-한국자본주의와 농업문제”라는 책을 읽었다.

김 교수는 1946년 해방 직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우리나라 최초로 ‘농경제학과’를 설립하고 농업경제학 강의를 시작하여 불모의 땅에 농업경제학을 개척하였고 후학들은 지방의 농대와 전문대학으로 진출 교수가 되고 농업경제학과를 만들어 ‘수원학파’를 형성했다. 김 교수는 1957년 ‘한국농업경제학회’를 창립하여 명실공이 ‘한국농업경제학의 대부’가 되었다. 1962년 서울대학교를 떠나 전남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한 후 1965년에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셨다.

김 교수는 ‘한국의 농가는 가족적 소농으로 비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경제주체이며 이를 연구하는 한국농업경제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적용을 받는 일반경제학의 응용분과가 아니며 자기 독립성을 갖는 학문이다’라고 했다. ‘소농생산양식은 기업생산양식과 다르다’라면서 ‘소농은 1) 자영적 소규모 토지와 다소의 노동시설과 노동수단을 보유하고, 2) 생산은 대부분 가족 등 자가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농업노동자도 지주도 농기업가도 아닌 자본주의 경제 발달과 더불어 분화하는 과도적 경제주체이며, 3) 반 자급적 단순 상품생산자로 생산과 소비가 미분화 상태에 있어 농산물 판매는 소농의 가계소비에 의존하며, 4) 생산 활동은 대체로 비 수익적으로 이윤은 고사하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소농은 5) 구조적으로 상당량의 잠재실업 (위장실업, 또는 비자발적 실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6) 생산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입이 불안정하고 만성적인 수지 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라고 했다.
김 교수의 소농경제론은 도시화-공업화에 대응한 농가 경제의 성격 변화를 연구하는 내 석사 논문의 이론적 틀이 되었고 후일 ‘농가 유형별 발전전략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내가 김준보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학부 3학년 때인 1966년 초청특강에서였다. 김 교수는 “농업경제학이란 일반경제학과 달리 화려한 학문이 아니다. 농업경제는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챙겨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수 있다”라며 “현장이 선생이다. 현장에서 배워라”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김 교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으나 연구 생활을 시작하고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나는 현장 중시의 실사구시를 강조하는 김 교수의 간단명료한 한 마디가 농업경제학 연구방법론의 핵심 요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대 농경제학과는 1962년 김 교수가 학과를 떠난 후 김 교수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지 못했고, 내가 학과에 입학한 1964년 이후에는, 미국에서 농업경제학 교육을 받은 김문식, 박진환, 반성환, 심영근 교수 등이 신주류를 형성하고 농업경제학, 농업경영학, 농업생산경제학, 농산물시장론 등을 강의했다. 당시 미국 농업경제학은 “농업경제학이란 경제이론 특히 ‘신고전 경제이론’을 농업문제에 응용하는 일반경제학의 응용분과이며 경제학과 분리된 독립된 학문이 아니다”라는 응용경제학적인 입장이 신주류를 형성하는 학문적 전환기였다. 나는 서울대 농대에서 미국식 농업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처음 접한 김준보 교수의 ‘소농경제에 기초한 한국농업경제학론’과 ‘한국농업경제학은 독자성을 가진 학문이다’라는 주장은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자 도전으로 다가왔다. 김 교수 주장은 주류의 응용경제학적 방법론적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는 농업경제학이란 학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의문이었고 더 나아가 일반경제이론과 농업경제이론의 관계, 그리고 이론의 인식론적 본질과 이론연구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의문이었다. 과연 김 교수의 방법론적 주장은 타당한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생겨난 ‘농업경제학은 어떠한 성격의 학문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미국 유학 시절 나를 깊은 철학적 고뇌에 빠지게 했고 ‘농업경제학의 성격과 논리’는 박사학위 논문의 중심주제가 되었다.

1968년 내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할 당시 서울대 농경제학과에는 미국 록펠러재단이 설립한 ‘농업개발협회(The Agricultural Development Council, the A/D/C)’의 아시아 책임자인 허만 사우스워스(Herman M. Southworth) 박사가 교환교수로 재직하면서 농업발전론과 농산물가격론 등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십여 년 이상을 미국농업경제학회지 편집위원장을 지낸 저명한 농업경제학자로 펜실베니아대학교를 정년 퇴임하고 한국에 왔다. 덕분에 나는 그의 강의를 듣고 미국 농업경제학의 핵심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 그의 부인은 대학원생과 농업경영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어회화 시간을 만들어 주어 영어회화도 익혔다. 그러던 차에 1969년 2학기를 앞둔 어느 날 사우스워스 교수가 나를 찾았다. 자신이 학부생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농산물가격론 강의통역을 맡아달라는 뜻밖의 부탁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그의 강의를 들어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던 터라 나는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항상 한 주 전에 강의안을 만들어 나에게 주었고 나는 열심히 준비하여 강의통역을 무사히 마쳤다. 그 일은 사우스워스 교수와 영원히 잊지 못할 인연의 시작이었고 내 인생의 새 장을 여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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