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농부. ‘습관 된 나를 넘어’ 저자.

적절한 순간 ‘삶의 한 단면’
정확히 베어내 보여주는 저자
그림을 이야기로 꾸며 ‘읽어줘’

“빛은 색의 영혼”이라고 말해

사람은 오감 중에서 시각으로 접수하는 색에 가장 민감하다. 그래서 미술 심리 치료가 생겨났을 것이다. 약동하는 봄. 봄은 색깔로 말한다. 봄은 나날이 달라지는 그림이다. 산과 들의 초목은 같은 땅에 뿌리박고, 같은 햇볕과 같은 수분을 흡수하는데도 색이 다 다르다. 색의 세계는 미묘하고 신비롭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한젬마. 명진출판사. 1999-09. 9800원)
그림 읽어주는 여자(한젬마. 명진출판사. 1999-09. 9800원)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봄의 춘흥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삶의 수많은 사연과 굴곡을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된다. 저자 한젬마는 삶 속의 여러 테마를 그림처럼 이야기로 꾸며 준다. 그렇게 그림을 ‘읽어’주는 여자다.

107쪽 그림을 읽어보자. 한 사내가 배꼽을 드러낸 채 고개를 오른쪽 어깨에 떨구고 낮잠에 취해있다. 침이라도 흘리고 있지 않나 유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위에 대충 걸치고 있다. 영락없이 앞뒤 챙기지 못한 채 졸음에 빠진 자세다. 무거운 고개를 버티는 한쪽 팔이 힘겨워 보인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어떤가? 입가로 슬그머니 웃음기가 오를 것이다. 저자가 이 글에 붙인 제목이 ‘미소 짓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러면, 그림의 제목은 뭘까? 졸음? 꿈? 아니다. ‘부전자전’이다.

졸고 있는 이 사내 옆에는 어린 아들이 똑같이 기우뚱 졸고 앉았다. 발과 손 위치는 물론 찌그러진 볼도 판박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 특유의 해설을 덧붙인다. “대학 선배 아이가 귀엽다 못해 너무 못생겨서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물었더니 어두운 데서 애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다음에는 밝은 데서 잘 만들겠다”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멋진 그림 해설이다.

‘좋아한다는 말 대신 주고 싶은 그림’이 한 점 있다. 몇 쪽인지는 직접 책을 보시라. 그 그림은 얼핏 보면 무성한 갈대들이 바람결에 휘청이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발갛게 수줍은 볼을 가진 소녀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마주 앉아있는 게 보인다. 바람 많은 갈대밭의 바스락 소리에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숨기고,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을 마주한 어린 연인. 이런 그림을 선물로 받으면 어떨까? 이보다 큰 고백이 있을까.

제1장이 ‘나는 당신의 그림이고 싶다.’이다. 제3장은 ‘그림과의 경쾌한 연애’다. 그림의 세계를 두루 여행하는 기분이다. 미술관, 포르노, 서양화와 동양화, 아프리카 미술 등 전 세계 미술관을 둘러보는 시간이 된다.

때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초라해질 때 그림들이 말을 걸어오더라고 저자는 술회한다. 속 깊은 친구와 같더라고 한다. 적절한 순간에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베어내서 보여주는 그 단호함을 만난다고도 한다. 색을 더하고 빼면서 빛의 경이로운 세계를 본다. 저자는 말한다. 빛은 색의 영혼이라고(194쪽).


[같이 보면 좋은 책]

존재의 근원 찾아가는 미술

나는 ‘기적 수업’ 읽기 모임을 반년 전부터 하고 있다. 매일 30분씩 여럿이 같이 읽는다. 하루를 온전히 꾸려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기적 수업 자료를 검색하다가 기적 수업이라는 그림을 봤다. 숨이 멎는 듯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속살 같다고나 할까. 컴퓨터 그래픽 같아 보이는 그 그림들은 신비의 영역에 뿌리를 둔 요정 같았다. 바로 책을 구했고 보고 또 본다.

빛으로 그린 영혼(조마 시페. 김우종 옮김. 정신세계사. 2016-10. 2만5000원)
빛으로 그린 영혼(조마 시페. 김우종 옮김. 정신세계사. 2016-10. 2만5000원)

<빛으로 그린 영혼>의 목차를 보면 차크라, 점성과 마법 다음 장에 기적 수업이 있다. 총 10여 개의 작품 중, ‘성령이 오다’라는 작품은 기적 수업 텍스트 26의 구절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살짝 벌린 양손 사이로 빛무리가 쏟아져 내린다. 작품 안에서 나오는 강력하게 살아 있는 빛. 죄의 어두운 생각들을 물리치고 가는 곳마다 용서가 즐거이 동행하는 것이라고 저자가 말한다.

저자는 포르투갈 출신의 화가 조마 시페다. 그의 그림에는 늘 수정이 올라가 있다. “수정을 올릴 때 나는 에너지를 방사할 지점을 알아내기 위해 모든 감각과 직관과 내적 시각을 총동원한다.”라고 했다. 그의 그림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금색과 은색의 잉크로 그린 선과 도형들. 그 위에 색색의 수정을 올려놓고 빛을 쬐어 특수촬영한 이 그림들은 저자가 오랜 기간 블라바츠키, 루돌프 슈타이너, 엘리파스 레비, 구르지예프, 요가난다, 에크하르트 톨레 등의 저작을 탐독한 반영물이라 하겠다.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영성 미술의 으뜸이다.


우뇌적 시각 훈련해볼까

우뇌로 보고 느끼는 색칠놀이(신현경. 호밀밭. 2014-07. 1만8000원)
우뇌로 보고 느끼는 색칠놀이(신현경. 호밀밭. 2014-07. 1만8000원)

신현경. 그가 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직하기 직전에 우리 고장에 모셔서 그림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라기보다 실습이었다. 책의 제목과 같은 <우뇌로 보고 느끼는 색칠 놀이>였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이 책은 색채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연결하는 색채 놀이 프로젝트다. 우뇌적 시각을 훈련하는 책이다. 최근 어느 의사가 좌뇌 기능을 잃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우뇌의 활성화에 그림을 사용하는 것이 이 책이다.

인간 좌뇌의 발달은 현대 물질문명의 산파 역할을 했지만, 우뇌의 퇴보는 삶을 삭막하게 만들었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말하는 삶. 우리가 잃어버린 원초적인 인간존재의 모습이 아닐까.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색이 뇌와 감성, 몸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좌뇌적 사고는 육체를 병들게 한다고. 그러면서 직관과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를 활용하는 훈련에 색을 이용하자고.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단히 체계적인 그림 연습 안내서이다. 1장은 무채색으로 시작하는데, 여러 명도 단계를 보게 한다. 2장의 원색을 거쳐, 내 삶의 색 찾기와 색으로 느끼는 감성과 자기표현 등을 다룬다. 마지막 장이 보색의 원리다.

“노란색은 애정결핍으로 인한 의존적, 타율적 사람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환하고 따뜻한 노란색을 충분히 체험하게 해서 마음을 풀어낸다.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해 보게 한다.”라는 구절은 220쪽 ‘색채 심리와 색채 치료’에 나온다. 색감과 감성 훈련으로 색채 치유 안내서 역할을 하는 이 책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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