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마음치유농장 대표. ‘소농은 혁명이다’저자

[한국농어민신문] 

철학으로 바라본 사랑의 감정
‘불꽃’같던 추억 되새기게 해
생동하는 봄, 사랑에 빠져보길

벼락이 치는 듯, 숨이 멎는 듯, 불쑥 다가온 사람.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사람. 내 영혼까지 정화해 주는 것 같은 사람. 운명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는 무수한 징후들. 망설임과 설렘. 근거 없는 의심과 자책. 끊임없이 확인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심리. 그 사람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내 생각은 할까?

이건 다 사랑에 빠진 자의 특징들이다. 논리도 이성도 철학도 끼어들 틈새가 없다. 기대와 불안과 원망. 희열. 추궁. 설렘. 이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자위한다. 사랑하는 자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07년, 1만2000원)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청미래, 2007년, 1만2000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저자는 사랑이라는 감정들을 철학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두 남녀가 우연히, 진짜로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건 운명이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야. 너 없인 못 살아. 수 없이 되뇌던 말들을 늦가을 뒹구는 낙엽처럼 내 던지고 불현듯 헤어졌다. 그렇다고 치자. 너는 나한테 하늘이 준 축복이야. 내 모든 영감의 원천이야. 그러다가 그(녀)와 헤어졌다고 치자. 여러 자책과 회한이 남았다. 아득한 세월이 허망하다. 짜릿했던 순간의 여운도 있기는 하다.

작가는 위와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불꽃’같았던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 줄 것이다. 사색이 들어 설 자리가 없는 사랑의 순간에 이 책은 철학과 심리학의 양념을 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육체적 매력이나 소유욕, 탐닉, 통제, 질투, 에로티시즘, 신선함 등 매우 격렬한 정서들을 경험한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사랑'이 한순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도 동반된다. 이런 현상을 저자는 지성과 감성, 철학과 논리학을 가져와 소설로 버무렸다.

와일드, 하이데거, 헤겔, 마르크스, 니체, 칸트, 비트겐슈타인, 플라톤, 밀, 프로이트, 플로베르 등의 인용문이 있어서 ‘사랑학 개론’ 같은 수필인가 싶겠지만 엄연한 소설이다. 흔하디흔한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깊이 있는 사색을 이끌어 내는 지은이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철학)소설이다.

저자가 23세 때 쓴 첫 작품이라고 하니 타오르는 사랑의 생생한 도가니 속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첫 키스에서부터 첫 말다툼. 그리고 화해. 다툼과 화해의 무한 반복. 어떤가. 당신의 어느 순간들이 되살아나는가? 이 책은 바로 그것을 재생시켜 줄 것이다. 친밀함과 부드러움, 불안과 환희, 인류의 전 역사에 굵게 흔적을 남기는 사랑이라는 묘약. 그 드라마가 다 담긴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사랑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도 자연히 읽게 될 것이다. 생동하는 봄날에 사랑에 빠져보시라.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함께 보면 좋은 책]
사랑에 빠진 사람들 머릿속 같은 은유, 비유

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김옥희 옮김, 북스토리, 2007년, 9800원)
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김옥희 옮김, 북스토리, 2007년, 9800원)

이 책 속의 ‘나’는 포르노 작가다. 어느 날! '나'는 엽서 한 장을 받는다. 수많은 시체가 그려져 있는 엽서. '멋진 일본의 전쟁'이라는 인물이 보내온 것이다. 그가 ‘나’의 집에 온다. 그는 시체 얘기만 한다.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이 이래서 좋은가보다. 저자가 자신의 정신세계와 환상까지 다 담을 수 있어서 말이다.

<존 레논 대 화성인>. 이매진의 가수 존 레논이랑 화성인이 무슨 연관이 있지? 제목처럼 소설 자체가 그렇다. 머릿속을 마구 휘젓는다. 속절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머릿속 같다. 현란하고 대책 없는 은유와 비유가 넘친다.

존 레논. 그는 비틀즈 멤버인 가수이자 평화의 수호자다. 영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로 하자 여왕에게 받았던 훈장을 반납한다. 화성인. 화성인은 평화의 파괴자이며 묘한 사회심리적 현상을 대변한다. ‘멋진 일본의 전쟁’은 평화의 파괴자에게 상처 입는다.

이처럼 소설의 구성이 매우 중층적이다. 천편일률적인 모범생 같은 소설구조에 싫증이 난 사람은 이 책의 매력에 빠져 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80 년대와 같은 일본의 전공투 세대인 저자. 소설을 통해서 시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평화를 꿈꾸자고 말한다. 사랑하자고. 평화를 위한 폭력은 있을 수 없다고.

성. 이 소설의 한 축이다. 모든 사회적 행위를 성 에너지에서 뿌리를 찾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프로이트 이론의 핵이다. 섹스는 사랑의 절정이면서 사랑의 도피처이자 무덤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시체’가 그것을 상징하는 건가 싶다.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박두규, 비, 2022년)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박두규, 비, 2022년)

저자 박두규는 그의 시를 그대로 빼닮았다. 시와 시인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두규와 같이 있는 시간은 그의 시를 읽는 시간과 그대로 겹친다. 그런 사람이다. 그가 따끈따끈한 새 시집을 냈다.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작은 꽃들/ 내밀한 속살에서 배어나는 은은한 향내/ 피고 지는 하얀 꽃들의 시간 너머로/ 끈질기게 소환되는 기억들
그 어디쯤에서 되살아나는/ 내 오랜 갈애渴愛의 숨소리/ 그 기억의 골목길을 비틀거리는/ 젊은 날의 빛나던 어둠과(중략)
나는 왜/ 불현듯 불온한 거리에 내몰려/ ....../ 보이지 않는 그대를 찾아온 세월은/ 그 사랑은 정녕 어디에 있는가.(31쪽)

시인은 텃밭을, 빨치산 여전사를, 낙지와 오징어를, 시월의 숙제를, 태몽을 모두 다 사랑의 발원지로 보는 듯하다.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들은 어디로 갈까 꿈도 없는 깊은 잠 너머로 갔을까 ... 제주 어느 오름에서 총을 쥐고 있을까 여수의 애기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며.... 이제 그 시간에서 풀려났을까”라고 역사의 굴곡진 주름들에도 사랑의 시어로 수를 놓는다.

<여순사건순천시민연대>와 <순천교육공동체시민회의>, <순천작가회의> 등을 조직했으며 전교조 활동과 함께 했으며 지금은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의 이력이 눈부신 시인이다. 이력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시. 존재의 근원을 향해 가는 시인의 구도적 삶이 녹아 있다. 내 눈에 그렇게 읽히는 시들이다. 제5장에 실린 작품처럼 이 시집이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될까? 그렇다면 섭섭하지. 암. 섭섭하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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