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마음치유농장 대표.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한국농어민신문] 

체계적인 앎의 즐거움을 주는 독서
시간 없는 게 아니라 습관이 안된 것 

가을하늘이 드높고 푸르다. 죠엘 슈마허 감독은 ‘유혹의 선’에서 주인공 키퍼 서덜랜드의 입을 통해 “오늘은 죽기가 좋은 날”이라고 외치게 했다. 나는 “책 읽기 좋은 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하기 좋은 날일 수도 있다. 놀러 다니기 좋은 날일 수도 있다. 산에 밤 주우러 가기 좋은 날이기도 하겠다. 나는 책 읽기 좋은 날이라고 우기고 싶다. 책 속에 다 있기 때문이다. 일도 있고 여행도 있고 음식도 있고 눈물도, 웃음도 있다.

독서동아리가 쓰다(책읽는 사회문화재단. 2022. 1. 비매품)

<독서동아리가 쓰다>. 며칠 전에 고창에 있는 ‘해리책마을’에 강의가 있어 갔다가 본 책이다. 독서. 쓰다. 두 단어가 어우러진 책이다. 볕 좋은 가을날에 이렇게 사람 냄새나는 책을 만난 건 복이다. 아래의 글을 보자.

“퇴직 후 일상은 평일과 주말,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구별이 없어진다. 어떤 면에서 ‘일상이 없다’라는 말이다…(중략)…이것이 전혀 즐겁지 않다.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속박이다.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23~24쪽).

올해 공식적으로 노인이 된 한라실버독서회 회원인 안서조의 글이다. <나이 든 나와 살아가는 법(사토 신이치. 노경아 옮김. 지금이책. 2020. 10.)>을 읽고 쓴 독후감이다. 글쓴이는 법적 노인이 되는 나이에 독서회에 가서 손에 책을 들었나 보다. 책의 1부는 그런 사람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 평범한 일상인들이 책 읽고 쓴 독후감. 유난히 정겹다.

‘운명 한 번 바꿔보시겠어요?’라는 글을 쓴 이윤경의 글은 이렇다. “사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안 된 것입니다. 안 읽어도 못 읽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58쪽)라고. 2부는 독서동아리 후기를 모아 놓았다. 책 읽는 사람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펴낸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의 누리집(http://www.bookreader.or.kr)에 들어가 보면 책을 읽으면 뭐가 좋은지와 책 읽는 방법, 재미, 보람 등이 줄줄이 나온다. 이 책도 피디에프로 올려져 있다. 독서 지원 사업도 있다. 온라인 월간지인 ‘나비(http://nabeeya.net/nabee/index_wide.html)’도 펴낸다. 심지어 온라인 독서 모임도 있다.

누군가 내게 유튜브나 영화, 티브이나 개인 동영상도 많은데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둔 답이 있다. 독서는 체계적인 앎의 즐거움이 있다. 요즘, 재미와 즐거움이 넘치는 세상이다. 진짜 내게 이로운 재미는 설탕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즉시 오지 않고 독서처럼 천천히, 은근히 다가온다. 유튜브나 영화는 몰입도도 높고 전달력도 좋다. 그러나 휘발성이 높다. <닥터지바고>를 1주 동안 읽는 것과 두 시간에 영화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이 보면 좋은 책]

완독에 대한 부담 덜어도 괜찮아

이동진 독서법(이동진. 위즈덤하우스. 2017. 6. 1만2000원)
이동진 독서법(이동진. 위즈덤하우스. 2017. 6. 1만2000원)

이동진. 그는 글도 잘 쓰지만 말도 잘한다. 영화 평론가가 이처럼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게 부럽고 신기하다. 약간 질투가 날 정도다. <이동진 독서법>은 읽는 내내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구어체다. ‘빨간 책방’ 등 방송 대담과 강의 했던 것을 기록한 책이어서다.

책의 1부는 내로라하는 동서고금 독서광들의 독서법을 빗대서 저자의 독서법을 들려준다. 글에서는 영화를 하는 그가 지닌 특유의 감각이 돋보인다.

1부의 여섯 번째 ‘꼭 완독을 해야 하나요?’라는 꼭지에는 책 읽는 사람들에게 광명의 빛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40~41쪽에 나오는데 그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완독에 대한 부담감부터 덜어내라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많이 읽어야 하는데 이동진은 책을 한 권 들었다고 해서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독자를 안심시킨다. 흥미가 없으면 포기하라고까지 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닥치는 대로 읽고 끌리는 부분을 우선 읽고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고 되어 있다. 책을 숭배하지 말라고도 한다. 그만큼 책과 친숙해지라는 말로 들린다.

독서법을 얘기하는 책이 읽기 어렵게 되어 있다면 그 독서법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이동진의 책은 읽기가 좋다 보니 그의 독서법마저 끌리게 된다. 유튜브에서 이동진을 검색하면 그가 읽은 책, 그가 말하는 독서법이 많이 있다. 알토란 같은 추천 도서 800권이 3부에 있다.


막막한 글쓰기, 나 자신부터 시작

속 시원한 글쓰기(오도엽. 한겨레출판. 2012. 8. 1만2000원)
속 시원한 글쓰기(오도엽. 한겨레출판. 2012. 8. 1만2000원)

<속 시원한 글쓰기>의 첫 쪽 첫 문장은 이렇다. “글 쓰라고 자리에 앉으면 대가리에 짐(김)부터 납니더.”라는 청소년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글쓰기 학교에 온 것이다. 그러면 뭣 하러 글쓰기 학교에 왔느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자식 공부시키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닦달을 하는 통에 늘 전쟁 상태에 있다는 얘기를 술술 풀어 놓는다. 저자는 그 청소년과 그런 얘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이게 글이다. 나 자신을 먼저 써 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글이 안 나올 때는 내 개인 카페에 마구잡이 글을 쓴다. 그야말로 멋대로 글을 쓴다. 아니면 글의 주제를 놓고 내가 나한테 질문하고 대답한다. 이른바 양자물리학자들이 하는 사고실험 같은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글을 완성하면 아주 쉽다. 이 책에서 말하는 ‘네 멋대로 글쓰기’가 그런 식이다.

책의 1부가 ‘먼저 너 자신을 써라.’고 되어 있는 이유를 알겠다. 3부에는 글의 얼개 짜기와 다듬기가 있고, 남의 글 베껴 쓰기가 있다. “훌륭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적는 일보다 좋은 수업은 없다. 문장 쓰기나 창작법 교재를 들고 숱한 공부를 하는 것보다 한 편의 작품을 옮겨 적는 일이 훨씬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와 옮겨 적을 때는 차이가 있다. 읽을 때는 작가의 의도에 빨려 들어간다. 베껴 쓰면, 작가의 마음이 훤히 드러난다.”(164쪽)

글이라면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바로 이런 생각을 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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