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희의 철학(김용휘. 이화여대출판원. 2019.)

[한국농어민신문]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로
3·1 혁명 이끈 지도자
"한 사람의 정신적 성장은
우주의 정신을 진화시킨다"


앞으로 달력에는 5월 11일의 날짜 아래에 작은 글씨지만 한 줄 적히게 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라고. 자그마치 125년 만에 동학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정해진 것이다. 이 날 광화문 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감격스러운 기념식을 가졌다. 

5월 11일은 동학혁명군이 정읍에 있는 황토현에서 관군과 접전을 벌여 대승을 거둔 날이다. 뒤늦은 기념일 지정에 나는 익숙한 전봉준 대신 손병희가 떠올랐다. 더구나 올 해는 3·1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라 손병희가 쉽게 떠올랐으리라.

조선 말기의 썩어빠진 조정에 저항하던 무수한 민란들이 동학혁명이라는 큰 봉우리로 모여졌고 그 흐름은 3·1 혁명과 무장독립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에 손병희가 있는 것이다. 마침 100주년이 되는 3·1 혁명을 기리며 <손병희의 철학>이 나왔다. 

이 책을 3·1 혁명을 이끈 지도자의 사상과 정신을 다뤘다고만 하기에는 설명의 부족함을 느낀다. 독립 운동가이자 혁명가인 손병희를 사상가이자 영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손병희를 영적 지도자로 다룬 첫 책이 아닐까 싶다. 

‘철학’이라는 책 제목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김용휘의 전작인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이나 <최제우의 철학>도 그렇지만 그는 정묘한 논리와 대중적 서술로 독자를 책 읽기의 맛으로 이끈다. 

손병희는 동학 천도교를 수운 최제우의 종교체험에 근거한 ‘시천주(내 안에 모셔져 있는 하늘님)’사상에서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는 근대적인 인본주의 종교로 자리매김 했다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 손병희는 종교지도자며 대중운동가다(35쪽). 그러나 “우주는 원래 영의 표현이다. 영의 적극적 표현이 형상 있는 것이고 소극적 섭리는 형상 없는 것이다”는 손병희의 <성령출세설>은 그를 영적 지도자 면모를 잘 드러낸다. 

김용휘는 영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고 그 만물의 조직과 활동으로 영은 고정불변의 인격체가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우주정신이라고 푼다(56쪽). 이처럼 영적 지도자로서의 손병희는 <무체법경>과 <이신환성>편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몸을 성령으로 바꾸라는 뜻인 ‘이신환성(以身換性)’은 자아가 소아를 벗어나 우주적 자아로 합일되는 상태이다. 이를 손병희는 ‘성품자리에 들었다’고 말한다. 3·1 혁명의 지도자가 이런 영적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한 사람의 정신 안에는 전 우주의 정신이 다 들어있고 한 사람의 정신적 성장은 다시 우주의 정신을 진화시킨다는 것이 손병희의 가르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문득 큰 질문 앞에서 서게 되는 인간, 자연, 우주, 신에 대한 관점, 영혼불멸설, 그들의 관계 등에 대해 손병희의 해당 저술들과 연결하여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다. 책의 뒤쪽에는 천도교에서 경전으로 다루는 손병희의 저술들이 덧붙여 있어서 원문을 읽을 수도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그의 역할과 시대적 위상, 삶을 보다 

▲ 의암 손병희 평전(김삼웅. 채륜. 2017)

큰 인물들의 평전을 20여권 이상 쓴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의 <손병희 평전>은 대부분의 평전이 그렇지만 한 인물의 역사적 역할이나 사상 뿐 아니라 성장과정과 삶의 전환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자서전 하고는 또 다른 평전만의 맛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손병희의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손병희는 총명하면서도 의협심이 강하고 호기가 넘쳤던 사람으로 보인다. 

서자라고 해서 문중의 조상 제사 때 묘역에 못 오게 하자 곡괭이로 묘를 파버리려고 했던 일화나 돈 심부름 갔다가 길에 쓰러진 사람을 살리려고 반 이상을 써 버린 일화가 그렇다. 결혼 때도 서자를 꺼리는 장인에게 ‘사람을 보고 딸을 맡겨야지 신분을 보고 맡기겠냐.’고 따져서 결혼이 성사된다.

삶의 역정에서 어찌 박수소리와 영광만 있겠는가. 167쪽 뒤로 자세히 나와 있듯이 일진회라는 친일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이용구와 송병준의 배신과 매국행위 앞에서 손병희의 인간적 고뇌와 대처는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권력과 돈에 빌붙는 수많은 지식인의 변절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의 친일행위자도 교묘한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3·1 혁명의 지도자인 손병희는 투옥되었고 모진 고문에 몸이 다 망가졌다. 너무도 병이 위중해져서 병보석으로 나왔지만 곧 운명하였다. 1922년 5월 19일. 

“나는 이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하지만 너희들은 보게 되리라. 신념을 잃지 말고 줄기차게만 나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62세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손병희의 묘는 우이동에 있는 봉황각 구내에 있다. 그가 독립 운동가를 양성하던 바로 그곳.

▲ 의암 손병희와 3·1 운동(오문환 외 11인. 모시는 사람들. 2008)

<의암 손병희와 3·1 운동>는 구한말의 시대적 경향과 3·1 독립투쟁, 그리고 1920년대 이후의 민족운동까지의 흐름을 12명의 필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책이다. 손병희라는 인물의 역할과 시대적 위상을 조망하기에 좋은 책이다. 산에 오를 때 먼저 펼쳐보는 지도라고나 할까.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손병희의 사상과 철학을 4명의 필자가 주제를 나누어 썼다. 2부가 재미있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운동가가 그렇고 개인 역시도 삶을 어떻게 판단하고 풀어가야 할 것인가가 화두가 되듯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근대화 시킬 것인가라는 숙제를 안고 갑진개혁운동 등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당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3·1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천도교의 정치운동을 다루면서 손병희의 문명개화 운동도 같이 기록하고 있다. 3,4부는 3·1 독립운동과 손병희 사후의 좌·우 대립, 그리고 종교와 정치가 통섭되고 민족과 세계평화가 통섭되고 천지만물과 영성이 통섭되는 손병희의 활동을 심층적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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