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을 꿰뚫고
여러 대륙을 아울러 온
1922년생 저자의
굴곡진 지구별 여행기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일선 이남순, 정신세계원,
15,000원

한국 최초·최고의 여행가였던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읽은 때가 1975년 여름이었으니 내 나이 10대 말이었다. 이 책은 엄청난 독서량이 쌓여가는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여행기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뒤로 ‘창비’에서 나온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최고봉에 올랐었고 작년에 읽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3권짜리 <나는 걷는다>가 뒤를 이었다. 이제 그 자리에 최근에 읽은 이 책을 두려고 한다. ‘현재’는 강렬했던 모든 기억을 ‘과거’로 돌리고 존재를 지배하는 법이라서 그렇다지만 이 책이야말로 여행기의 전형이 아닐까 싶어서다. 대자아를 발견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 모든 여행의 진면목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일선 이남순. 정신세계원. 15,000원)>는 한 존재의 지구별 여행기라고 하고 싶지만 요즘 유행하는 우주시민들의 초월적 이야기로 오해 받을 수 있다. 남북한을 꿰뚫고 여러 대륙을 아우르는 가족사 중심의 인문사회 입체 여행기라고 하면 어떨까.

저자인 일선 이남순은 1922년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했고 귀국해서는 모교에서 교원생활을 했지만 전쟁 통에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다.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42년 동안 이민자로 살면서 북에 가서 26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해외 통일운동을 했으며 아들과 딸의 안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성치유와 영성운동으로 거듭났다.

저자는 어떤 계기로 2006년에 제주도로 영구 귀국하여 영성공동체 ‘에미셔리’를 가족과 함께 일구었다. 책은 이러한 과정의 굴곡을 곡진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 책을 소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영국과 호주와 미국 등지에 살았던 4남매 자녀들이 이 책을 같이 엮었다. 그들의 마음에 담긴 어머니 모습은 주고받은 편지와 기억의 교차 확인으로 시대와 삶을 아우르는 여행의 입체감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여행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당신의 삶 전체를 놓고 전해준다. 역경을 내적 성장을 위한 디딤돌과 자양분으로 삼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일 때도 자신에게 맞는 1시간짜리의 수련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매일 수행했으며 자기교정을 계속한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재 경험하고, 뚫고 지나감으로써 뿌리 깊은 어두운 기운을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행자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단지 바라보고 그 순간 최선의 긍정 선택을 한다. 인생 여행의 진수라 하겠다.

독자로 하여금 다다르게 하는 결론은 대자유의 평화다. 저자와 그의 둘째딸 반아님이 강조하고 있는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은 사실, 소자아를 벗어나 대자아에 이르는 지난한 여행의 종착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처럼 22년생 어머니의 막내아들인 박유진은 저자인 어머니를 ‘삶을 가르쳐주고 영혼을 일깨워 줬다’고 고백한다. 이 아들에 대한 저자의 고백도 유사하다. 여행은 이렇게 서로에게로 흐르고 흐르는 과정인가 보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송성영, 심지, 15,000원

분노의 고통을 넘어서는
인도·네팔 속 ‘길 찾기’

여행자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길을 가고, 새로운 길을 낸다는 면에서 수도자라고 할 수 있다. 수도자. 외모부터 그러한 사람이 송성영이다. 그가 새로 낸 책이 있다기에 바로 읽었다.

삶의 고통은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라는 탐진치(貪瞋癡)에 있다고 하는데 송성영은 어리석음과 욕심은 결국 분노로 집결되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이 책은 분노의 고통을 넘어서는 길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인도‧네팔 여행기다.

인도의 ‘코사니’시내에서 빈둥빈둥 20여일이나 어슬렁거리면서 만난 네팔 노동자 이야기는 고통의 반대말인 행복의 일단을 보여준다. 고급 등산복을 입은 한국여행객들은 거지꼴인 송성영을 진짜 거지취급을 하지만 이 네팔 노동자는 담배 한 개피의 인연을 주고받으면서 네 식구가 살고 있는 세 평 남짓한 자신의 집으로 저자를 초대했고 배가 터지게 먹인다. 나그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이 네팔 노동자는 인도까지 와서 한 달 벌이가 1만 루피, 우리 돈 16만원 미만이지만 이방인에 대한 베풂을 당연시 한다.(35쪽)

카트만두에서의 ‘비욘드 네팔’을 찾아가는 사례도 비슷한 감흥을 안겨준다. 지속가능한 농업기술을 보급하고 농촌 여성과 청년들을 지원하는 엔지오 단체인 이곳을 100미터 코앞에 두고 1,500루피 입장료를 내고 고궁을 거쳐 가는 과정은 삶이 이런 것인가 깨닫게 한다.

이렇게 받은 자비들을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리라 저자는 가슴에 새긴다.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감사와 자각과 은혜가 가득 차 있다. 인생 자체가 그렇다는 듯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민우, 플럼북스, 13,000원

스릴 넘치는 남미 여행
427일 동안의 기록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박민우. 플럼북스. 13,000원)>은 위의 두 책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여행기다. 내가 2년 전에 한 달 동안 남미 여행을 떠나면서 읽은 책인데 유쾌하기가 흥겨운 공연장과 같고 위기일발의 연속이 스릴러 영화 같다. 이는 저자의 성격과 젊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로 가면서 히치하이킹(자동차 얻어타기)을 시도하는 박민우는 멈춰 선 초대형 트럭운전사가 너무 험상궂은 인상이라 과달라하라로 안 가고 치와와를 간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운전사는 그곳까지도 간다고 어서 올라타라고 했다. 납치되어 마피아 조직의 지하실에서 깨어나는 자신을 문득 떠올리면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는 트럭에 동승한다.

그 트럭에서 잠이 들어버린 자신을 두고 잠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일관성 있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한 마디로 여유 만땅이다. 멕시코, 과테말라, 파나마를 누비는 427일 동안의 기록들이 350쪽이 넘는 책에 이런 식으로 담겨있다. 이런 여행자와 동행하면 여행이 더 즐거울 것이라는 느낌과 함께 나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에 이런 동행자가 되어야겠다는 각성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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