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마음치유농장 대표.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한국농어민신문] 

삶의 힘겨움 객관화 될 수 없고
자신의 버거움은 절대치로 작용
노지심·송강·노준의 등 옛 호걸들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전해줘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구주모, 피플파워, 2016.11. 1만6000원)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구주모, 피플파워, 2016.11. 1만6000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삶의 힘겨움은 절대 객관화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된다. 각자 느끼는 자신의 버거움은 절대치로 작용한다. 자신의 오늘 현재가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법이다. 매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참상이 전해져 오지만 친구에게서 들은 섭섭한 한마디가 더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는가.

옛사람들이라도 다르지 않다. 이 책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에 생생히 담겨있다. 어쩜 이렇게 오늘날과 똑같은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고전이란 원래 읽고 또 읽을수록 우러나는 깊은 맛이 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읽은 수호지의 느낌은 단순한 영웅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상천외한 무용담에 가슴 후련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그 유명한 스님인 ‘노지심’이 나오는 제12장 ‘밑바닥 인생 장삼이사’를 보면 우리네 뒷골목을 보는 듯하다. 도박장에 가서 돈을 잃자 난동을 부리는 ‘이규’. 대상국사 채마밭을 관리하는 중들을 골탕 먹이며 채소를 몰래 내다 팔아 거나한 술판을 벌이는 동네 깡패들. 새로 부임한 중 노지심이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면서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세상이었다(227~223쪽).

수호지의 ‘무송’은 술고래의 대명사다. 경양강의 입구에 있는 주점에서 내 건 원칙은 세잔 마시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만치 취한다는 것이었다. 18잔을 마시고도 끄떡없었다. 쾌활림에서는 30잔 이상을 마시고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이 대목에서 책 저자 구주모의 친절한 안내가 등장한다.

수호전은 송대 이야기라면서 그때는 고량주가 없었고 20도 이하의 황주라는 술을 마셨다고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500년 고전(古典)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먹기 좋게 입에 떠넣어 준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수호전의 여러 판본을 두루 섭렵한 저자는 그렇지 않아도 유장한 문체와 대서사시와 같은 원본 소설 ‘수호전’을 더 입체적으로 알게 도와준다.

양산박의 대두령 송강. 도적이 된 갑부 노준의. 다양한 호걸들의 이야기는 마치 독자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류사회가 인정하는 노준의 같은 명망가를 도적 소굴인 양산박으로 끌어들이고자 대두령 송강 등이 공을 들인 대목을 보면 개인 인생살이의 전략과 노력을 떠올리게 한다. 점쟁이로 변신해서 그를 유인하는 대목은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다. 천하를 호령하는 호걸도 제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모략은 모르는 현실도 엿보인다. 끝내 도적 떼 소굴로 가서 부 두령이 되는 과정은 드라마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유전무죄에 시달리는 하층민의 진정한 친구가 된 소설 수호전. 모두 1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박식하고 친절한 해설사를 곁에 두고 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같이 보면 좋은 책]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세계의 실천가들

꿈을 살다 (박용준,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젝트 팀, 궁리, 2008.07. 2만3000원)
꿈을 살다 (박용준,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젝트 팀, 궁리, 2008.07. 2만3000원)

양산박 두령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늘날에 이런 산채가 있다면 들어가 보리라는 꿈같은 꿈을 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 꿈을 꾸는 사람이 있고 그 꿈을 오늘 이 순간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꿈을 살다>는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책에 나오는 15꼭지의 인물들도 그렇고 책을 낸 사람들도 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디고 서원의 청소년들이 세계의 창조적 실천가들을 찾아 떠난 여정과 결과물을 사진과 함께 묶은 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과학 교과서를 제작해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마크 호너 등 세계 각지에서 꿈을 이미 현실로 만들어 가는 실천가들의 이야기는 재미와 지식을 함께 느끼게 한다. 글 꼭지마다 여행에 참가한 학생이 글을 올리고 방문한 대상자의 인터뷰나 글이 있어서 여러 시각에서 여행지를 둘러보는 느낌이 든다.

213쪽에 나오는 ‘몸의 학교’ 친구들은 참 인상적이다.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빈민촌이다. 경찰과 동행하지 않거나 군인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아예 접근할 생각을 말아야 할 그곳. 그곳은 춤으로, 몸으로, 예술로 삶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꿈꾸는 공간이었다.

마지막 일정인 호주에 도착한 인디고 서원 일행이 콜링우드 농장에 찾아간 이야기가 반가웠다. 내가 2013년에 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는 농장. 나처럼 인디고 청소년 눈에도 그게 감동이었나 보다. 이 책으로 카트만두의 수상, 네팔의 청소년들, 아프리카와 남미를 두루 둘러볼 수 있다. 젊은 이상가들, 세계의 창조적 실천가들과 함께.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 (이철국, 민들레, 2018.7. 1만2000원)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 (이철국, 민들레, 2018.7. 1만2000원)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를 읽으면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진화하는 아이들과 공진화하는 교육 주체들. 이어서 진화하는 교육. 이렇게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교육의 변화, 교육의 바람직한 진화를 강조한다. 위에 소개한 두 책의 주인공들. 이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 큰 몫을 담당한다고 할 때 교육 주체라 할 교사와 학부모와 사회관계가 함께 진화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 이철국의 교육철학과 세계관으로 드러난 대목이라 하겠다.

저자는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무주에 있는 푸른꿈고등학교, 고양 자유학교를 거쳐 중등 대안학교인 불이학교에도 몸담았었다.

저자는 교육을 이렇게 말한다. 성장호르몬(비료-조기교육과 사교육)을 주지 않으며 제초제(체벌과 우열반)를 뿌리지 않는 유기농과 같은 것이라고.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 존중받으면서 자라는 과정,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72쪽).

저자가 강조하는 새로운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아이들을 지키는 새로운 파수꾼인 마을이다.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놀아주며 먹거리와 배울 거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을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유기농 반찬가게, 공동육아 어린이집, 어른들의 독서 모임, 초등대안학교 등이다. 공동 노인요양을 포함시켜도 되겠다.

이렇게 일상 자체가 공부고 놀이고 어울림이 되는 교육. 인디고 청소년들이나 창조적인 꿈을 이미 살고 있는 위 책 속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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