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2007. 조화로운 삶. 9,800원

알제리 사막 혹독한 환경서 태어나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농부,
‘피에르 라비’의 삶과 사상 담아내

“나의 이 넘치는 편안함이란
누군가 치른 희생 덕분 아닐까”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이 농부가 아니라 대학교수 같았다. 또 성직자 같았다.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다. 2007년께 얘기다. 뒤이어 나온 그의 저서들은 농부와 지식인, 농부와 성자의 간극을 점점 메꾸어 주었다. 어쩌면 진정한 농부의 모습이야말로 지성과 신성을 두루 갖춰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장 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2007. 조화로운 삶. 9,800원)를 쓴 부부 저자인 ‘장 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이 두 사람은 제도 교육을 별로 받은 바 없는 주인공을 묘사하기를 ‘작은 체구와 마른 얼굴, 정중했으나 따뜻했고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이라고 했다. 눈에 대충 그려지는 모습이다.

이런 풍모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에르 라비가 꼬박 1주일 동안을 아무런 외부의 방해 없이 심지어 전화도 받지 않고 통째로 카르티에 부부에게 시간을 내 줬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방문자에게 일상을 멈추고 선뜻 1주일을 통째로 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삶은 사는 사람인가? 이처럼 1주일을 마음먹은 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경지에 오른 대자유인이 아닐까.

“이따금씩 제가 식인종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편안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을 때 ‘누군가 그 안락함을 위해 자원을 나누어 줌으로써 그가 값을 치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의 이 넘치는 편안함이란, 그들의 삶을 먹고 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씨앗을 직접 뿌리지 않고서 손에 쥐게 되는 열매에 대한 피에르 라비의 겸손과 고마움이 엿보이는 말이다. 씨앗을 뿌리는 노동은 단순히 밥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신의 창조 행위에 동참하는 일이다. 노동이 거룩하며 하나의 예배이자 기도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고 삶의 전환점을 맞아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가 대화체로 씌어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사이사이에 그런 현상과 사건의 맥락들을 진단하고 해석하는 피에르 라비의 사상과 철학이 간결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태어난 고향은 아프리카 알제리다. 알제리는 잘 알려져 있듯이 13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사막의 라이온’이나 ‘알제리 전투’라는 영화로도 알려진 나라다. 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서 피에르 라비는 태어나고 자랐다. 실천적 사상가가 출현하는 토양은 늘 이처럼 척박한지도 모른다.

그가 태어난 곳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오아시스다. 알제리 남부의 ‘케낫사’지역. 망망대해의 작은 섬 같은 곳이다. 인간의 의지와 인내로 대대손손 정성으로 만든 녹지.

사막의 능선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났다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던 대상들의 행렬. 아스라한 지평선을 가물거리는 아지랑이와 신기루들. 피에르 라비는 유목민으로 표상되는 끈질긴 생명력. 사막이라는 혹독한 풍경 한 가운데서 조화로운 공동체를 창조한 농부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듯하다. 책에는 이런 농부철학자 주인공의 삶이 잘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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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관리자’ 였던 농부들,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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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피에르 라비. 2013. 예담

위의 책이 피에르 라비의 구술을 기록한 것인데 반해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피에르 라비. 2013년. 예담)은 직접 쓴 책이다. 땅과 경작, 농부와 문명. 이 모두를 현실감 있게 책에 담았다.

《땅을 벗어난 문명의 시간》이라는 장에서 피에르 라비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 좀 아까자고 편리한 도구들과 전자기기를 만든 인간들은 정작 밤낮으로 일하는 처지가 되었다. 생산효율을 높여 시간을 절약하도록 고안된 장치들이 애초의 목적을 상실했다. 게다가 정교한 도구의 기능들은 인간이 거기에 적응되도록 강요한다.”

농사에서도 같은 이치가 작동한다. 그래서 피에르 라비는 ‘변질된 대지의 관리자들’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생산 제일주의에 포섭된 농부를 일컫는 말이다. 피에르 라비가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아내인 미셀과 프랑스 남동부 지역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인 ‘아르데슈’에 온 것이 알제리전쟁 직후니까 그의 나이 25세 남짓 되어 보인다.

농촌만큼은 그러지 않을 거라 여기고 왔건만 어엿한 가장이 된 옛 동료들은 한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었지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생산제일주의에 심취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농약과 농기계와 다수확과 소득증대에 눈이 멀어 수천 년에 걸쳐 이 지구 생태계의 젖줄인 어머니 대지를 관리해 오던 전통 농부들은 다 퇴장하고 대지의 진정한 관리자 역할은 막을 내렸다고 개탄한다.

당시 프랑스 농업협동조합은 전통방식으로 가축을 기르고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던 전통 농가들은 배척했으며 단일종의 대규모 농장과 각종 대형 농기구를 마련하려는 농민에게 쉽게 돈을 빌려주었다. 심지어 대출 우대조치로 그들에게는 이자도 싸게 해 주었다. 농부들은 점점 더 강력한 농기계를 다투어 구입했고 농업은 기업이 되어갔다. 오늘날 우리의 농협과 농촌의 현실과 판박이다.

소설 속 몽환적 장면 통해
인간 존재와 현대문명 비판


사막의 정원사 무싸
피에르 라비. 2007.조화로운 삶
제2988호<주2회간>

<사막의 정원사 무싸>(피 에르 라비. 2007년. 조화로운 삶)는 소설이다. 피에르 라비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서야 비로소 전달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나보다.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떠올린다. 몽환적인 장면들은 다 인간존재와 현대문명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고 미래에 대한 예언들로 읽힌다. 소설 속 주인공 ‘무싸’는 피에르 라비의 친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그의 아들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장장이였던 아버지는 강한 근육과 강철보다 단단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는 고백을 통해서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피에르 라비가 쇠와 나무 같은 재료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고 전 생애에 걸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 만드는 솜씨를 익히게 했다고 기억한다.

피에르 라비는 ‘사막의 정원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프랑스 양부모 집에 가 살다가 쫓겨나다시피 한 경험. 공장생활을 하다가 청산하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새로운 창조의 단계이고 디딤돌이 된 듯하다. 그래서 더 그가 빛난다.

/농부.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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