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촛불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보다 성대한 잔치가 있었을까. 형형색색의 옷차림들 갓난애부터 호호백발 할아버지까지. 그 뿐이랴. 각종 구호와 주장. 절규와 함께 희망이 깃든 표정들. 노래와 춤. 행진 그리고 행진.

광장은 4개월 내내 뜨거웠다. 그리고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되어 권좌에서 물러났다. 바로 그 광장의 첫 모습을 스케치하듯이 기록한 책이다. ⟪11월-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농부·노동자·학생·교사 등
각계각층 필진 14명 참여
탄핵 장담 못했던 혼란정국 생생
시민 각자의 촛불광장 의미 기록


우리가 ‘5월’이라고 하면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는데 앞으로 ‘11월’이라고 할 때 부패하고 무능한 박근혜정권을 끌어내린 촛불혁명을 떠올리게 될까. 4·19나 8·15처럼 교과서에 오를까. 헌법 전문에라도 들어갈까? 시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 역사적 사건으로 말이다.

이 책의 집필에는 14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농부와 노동자, 동화작가와 고등학생, 시인, 교사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이다. 교정 원고 마감이 12월 초였으니 당시의 요동치는 정국 상황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텐트와 한 몸이 되어 광장 땅바닥을 질질 끌려 다녔다는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이 텐트를 다 빼앗기고는 깔고 앉은 스티로폼 한 장마저 에워싸고 있는 경찰들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대목이 나온다. 경찰에 포위당한 채 하염없이 시멘트바닥에 앉아서 다시 텐트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서 한 사람이 반문한다. “우리가 여기 나와 있는 게 의미 있을까요?”라고. 3개월 뒤 박근혜가 탄핵될 것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이때의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필진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의 글은 핍박받는 노동자의 쌓인 울분을 생생하게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민중총궐기대회를 폭도들의 테러행위라고 했다. 국회는 복면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하고 검찰은 일제 때의 소요죄를 부활시켰고 경찰과 검찰은 28명을 구속하고 700명을 기소했다.”(53쪽)

최근 탄핵을 전후해 친박 단체들이 세 사람의 사망자까지 내는 등 난동에 가까운 도심폭력을 벌인 것에 대한 정부당국과 언론의 태도랑 비교가 되며, 당시 백남기 농부가 공권력에 의해 사망까지 했는데도 도리어 집회 참가자를 폭도로 몰았던 사실이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박사모 등의 폭력 관련자들이 단 1명만 구속된 것과 너무도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자신이 어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겁이 난다는 고등학생인 한하늘, 부산 사는 소설가 배남길, 교사 권혁소, 여성운동가 나영 등은 지역문제와 성차별, 장애인 혐오 등에 대해 촛불광장의 의미를 새겨 넣고 있다.

녹색당 하승우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등의 정치 개혁과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촛불광장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엉터리 정치인에 대한 소환권, 참여예산제, 중앙정치의 지역자치로의 전환, 법원이나 경찰 등 사법권력에 대한 직접선출제 등의 제안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제왕적대통령제의 대안으로 보인다.

2016년 11월에 광화문에서 촛불로 상징되는 항쟁이 일어난 것은 사실 오래 전부터 그 징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묻어버리고 짓누르고 틀어막은 부정과 사건사고들이 수 없이 많았다. 사고와 사건이 저절로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역사란 것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 그것을 기록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는 그 사건의 성격과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현장 속에서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만하다.


[함께 보면 좋은 책]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현대사>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역사의 큰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다양한 삶과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그 해석들이 모아져서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해를 넘겨가며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촛불집회도 그렇게 봐야 하고 촛불집회의 맞은 편에 있었던 보수 친박 단체들의 탄핵반대 세력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게 옳다. 두 세력 사이에도 여러 층의 정치사회 세력이 있다.

탄핵이 이뤄져서 1차적인 승리를 거둔 촛불항쟁이 어디로 향할지도 역사적 흐름의 큰 줄기에서 짚어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이 책들에서 가늠할 수 있겠다.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현대사⟫와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다. 6월이라고 할 때 6·25를 떠올리는 사람과 6월 항쟁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듯이 같은 사건도 ‘역사’는 다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터에 가 싸우는 동안 파병을 밀어붙인 박정희정권은 1967년에 대통령에 재선되고 1971년에 3선에 성공했으며 10월 유신이라는 제2의 쿠데타를 일으켜 철옹성같은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박정희 자신이다”(앞의 책 201쪽)

“박정희를 굳이 ‘다카키 마사오’라고 부르는 것을 멋으로 여기는 분이 있는데 그 분들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해방 전에 학교에서 불린 이름이 뭐였는지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물어봤더니 우리 부모님은 싫어하지 않고 좋아했습니다. 자기들 인생에 관심 갖는 아들이 고마웠나봅니다.”(뒤의 책 202쪽)

앞의 책은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해 ‘얼마를 받더라도’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밀어 붙인 박정희 정권을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본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소개하며 길게 6·3 항쟁을 기술하고 있다(215쪽). 한 마디로 하자면 더러운 돈을 받아 권력기반 다지기에 썼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박근혜 정권의 2015년 위안부 협상과도 연결된다.(288쪽)

 

반면에 뒤의 책은 미국의 동아시아전략과 일본의 경제성장에 편승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었냐고 반문하면서 한일국교정상화 자체는 찬성한다. 김대중 당시 야당지도자가 정치생명을 걸고 한일협정에 찬성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204쪽).

두 책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에 대해서도 시선이 다르고 해방정국 상황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앞의 책은 북한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비해 뒤의 책은 우상화와 탈북자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반면에 뒤의 책에는 더러운 전쟁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다.

4·19의 시(참여시인 신동엽의 ‘금강’을 말하는 듯-필자 주)도 읽었지만 5·16의 밥(경제성장을 말하는 듯-필자 주)도 먹었다는 주대환은 스스로를 새로운 진보라는 의미로 뉴레프트라고 말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북한 농지개혁이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남한 농지개혁보다 한참 못 미친다고 많은 수치를 인용하고 있다.

앞의 책의 필자로 참여한 노항래는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그 뒤로 친일파가 양민학살과 빨갱이사냥으로 사회 모든 분야를 장악한 과정을 서술한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긴급조치와 용공조작사건들로 점철된 군사독재를 지적한다.

11월로 상징되는 촛불광장은 여러 이질적 분자들의 집합이었다. 농부, 학생, 주부, 예술가, 교사가 있었고 해고노동자가 있었고 개성공단 사장들도 있었다. 촛불이 어떻게 진화해 갈지는 시민의 몫이라 하겠다. 역사적 안목에 더하여 남과 북의 하나 됨, 계층과 지역의 하나 됨이 풀어 갈 과제다.

▲ 전희식(농부.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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