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최고의 작가
‘응웬 옥 뜨’의 최신작

미에우 나루터
응웬 옥 뜨 지음하재홍 옮김. 아시아 펴냄.12,000원

말 할 수 없이 아픈 책이다. 얇은 책 행간에는 아홉 갈래로 흐르면서 베트남 남부 13개 성을 감싸고도는 메콩강만큼이나 넘치듯 눈물을 솟아나게 한다.

지난달 남북문제를 다루는 어느 국제정치학자의 강의에서 “깡다구 있는 나라”라고 하던 베트남. 20세기 중·후반에 프랑스와 미국, 중국과 차례로 전쟁을 치러 완전한 독립을 이룬 나라 베트남. 베트남의 젊은 작가 응웬 옥 뜨의 <미에우 나루터(하재홍 옮김. 아시아. 17년 10월. 12,000원)>다. 여기에는 일곱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며칠 전 한국에 온 작가로부터 직접 받아 단숨에 읽은 책이다.

고아에 사팔뜨기에 독신인 ‘르엉’은 나룻배를 모는 사공이다. 열두 살 때부터 서른 한 살 되도록 나룻배 위에서 먹고 자고 했다.

“이놈아 노를 저으면서 앞은 안 보고 어디 엉뚱한 곳을 보는 거야?”라고 놀리면 씩 웃고 만다. 고아로 자라 왜소한 몸에 빈털터리가 그런 말에 화를 내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겠느냐고 작가는 썼다.(‘미에우 나루터’152쪽)

뒤집힌 나룻배에서 겨우 뭍으로 올라 온 손님이 으르렁대며 “이 싸가지 없는 놈, 이 무식한 새끼”라고 욕을 하면 ‘르엉’은 예의 멍청해 빠진 웃음을 헤헤거리며 어떻게 손님이 하는 욕들이 그렇게 자신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지 감탄할 뿐이다.

술집과 뭇 남자들의 돈다발을 쫓아 알몸으로 돌고 돌다가 미에우 나루터의 요금소에 앉아 르엉의 안 사람이 된 ‘봉’이는 낡은 소액지폐들을 바르게 펴서 금고에 넣는, 한국의 가을 햇살 같은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2007년에 번역 출간되었다가 지금은 절판된 저자의 대표작 ‘끝없는 벌판’도 실려 있다. 저자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것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베트남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받았고 2010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있다. 깡패들에게 윤간을 당하는 주인공에게로 제 자리를 찾아 돌아 온 자신의 아버지를 상봉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윗옷을 벗어 알몸을 덮어주는 순간에 떠올린다. 아이를 밴다면 낳겠다고. 엄마의 가르침으로 때때로 어른들의 잘못도 용서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키워보겠다고.

그녀를 수렁에서 건져내고자 내 밀었던 모든 손길들이 그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허튼 짓거리들이 되고 마는 현실의 전복이라고나 할까. 내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사이공의 흰옷’과 세계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디엔비엔푸 전투’를 떠오르게 하며 북한만큼이나 깡다구 있는 베트남을 마주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비상하는 방
박혜원 지음.문학나무 펴냄. 12,000원

쓸쓸해서 더 깊은 사색의 오솔길로 들어가게 만드는 작품들을 가을에 읽는 것은 복이라 하겠다. 얼핏 보기에 아래 두 작품은 서로 상반되어 보인다. 앞의 소설은 가슴 아프고 슬퍼서 속이 쓰리다. 뒤의 시는 씩씩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쓸쓸함과 숙성감이라는 가을의 두 측면이 보인다. <비상하는 방(박혜원. 문학나무. 2013. 6. 12,000원)>과 <들판에 다시 서다(송만철. 문학들. 2017. 9. 10,000원)>이다.

작가 박혜원은 정통 소설기법으로 반듯하게 이야기를 푼다. 복선이 겹으로 깔리지만 일직선을 긋는 이야기 구성은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강직하게 전한다. 10개의 단편 중 다섯 번째 실린 ‘회신(回信)’이 그렇다.

“나의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오든지 전화를 해야 할 그녀에게선 며칠째 소식이 없다. 아파트를 오르내릴 때마다 편지함을 들여다본다. 사보, 잡지, 은행카드 결제보고서, 웰빙건강 선전쪽지 등 우편물 속에 그녀의 소식은 없다.”

그러다 주인공이 기다리는 회신이 왔다. 그러나 수신인은 그녀이고 발신인은 주인공이다. 기다리던 답장일 줄 알았던 회신. 그 회신에는 ‘수취인불명’이라는 스탬프와 함께 ‘사망’이라는 갈겨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자동응답기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목소리만 덩그렇다. “이젠 딸이 내 노래를 대신 불러 줄 건가 봐요.”

‘멜라니온의 황금사과’와 ‘여리고로 가다가’에서도 독자는 깊고 짙은 가을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저녁노을의 평화를 읽어낸다면 보너스가 될 것이다. 표제작 ‘비상하는 방’도 그렇다. 남미의 도시이름인 ‘뿌에르또 바리오스’에서는 지리산과 여성과 분단을 통해 시대의 구원을 담고 있다.

들판에 다시 서다
송만철 지음. 문학들 펴냄. 10,000원

송만철도 박혜원처럼 오랜 교직생활을 거쳤다. 그리고 농부가 되었다. 둘 다 정년을 기다리지 않고 학교를 벗어났다.

송만철 시집 부제는 ‘백남기 농부의 추모시집’이다. 고 백남기와 같은 보성 농민회에서 활동했고 같은 중앙대학교를 다녔다. 백남기 농부가 누워있던 병원과 장례식장에서 쓴 시들이다. 지난달 백남기 농부 1주기 추모집회가 있을 때 시인은 이 책을 들고 집회현장으로 나왔었다.

태 풍이 지나가고/여물어 가던 벼 포기가 쓰러진 논에/할머니 둘/벼를 세우고 있네요/한 숨 한 숨/살려내지 못하면 세상 끝이다는 듯/넘어진 어린 손주 덥석 안아 올려/보타 버린 쭈그렁한 젖을 물려 얼러 대고 있네요.(‘저 들에’ 전문)

쓰러진 벼들이 우뚝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송만철은 백남기 농부를 ‘밀밭에서’ 떠올리고, ‘그대여 나여’라며 그를 부른다. ‘논두렁시인’으로 불리는 작가는 ‘울려라 농악이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당에는 술상이요 부엌에는 떡국이 바글바글/꽹과리 없으면 어떠랴 징채 던져버린들 어떠랴/솥뚜껑 양판때기 잡힌 대로 두들겨/온 몸으로 울려서 흥에 겨우면 그만이지(이상 축약)

온 몸으로 흥을 돋우고 지금 이곳에서 들판에 다시 선다. ‘식음 전폐한 혁명을 들깨울 씨앗’으로.

전희식/농부·‘옛 농부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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