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이 삶에게안부를 묻다
김경환 외, 검둥소
2019년, 1만4000원.

[한국농어민신문]

장례지도사인 작가가 바라 본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이야기
유족 공통어는 ‘미안해요, 죄송해요’
살아서 충분히 용기내어 보길


천 년 살 것처럼 살아라.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여기고 살아라. 둘 다 삶의 존귀함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다.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떠올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약한 사람이나 노인, 생활고에 허덕이는 민초가 아니더라도 불현듯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스스로 직면하기도 할 것이다.

<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는 아예 죽음이라는 것이 내 코앞에 다가와서 잘살고 있냐고 안부를 묻는 책이다. 다양한 위치에서 죽음을 겪은 12명의 사람들이 죽음으로 돌이켜 보는 인생 얘기를 한다. 유체이탈이나 환생자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적나라하게 죽음을 직면한(했던) 사람들이다. 숱한 상조회 중 우리나라 유일의 협동조합인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장례지도사인 박태호의 글은 ‘죽음의 모양’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과 관계를 맺는 군상들의 실상을 보게 한다. 보통의 유족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반 상조회사에 다니며 월급보다 훨씬 많은 노잣돈에 홀려 살던 그가 선배에게 “오늘은 완전 개털이었어요. 유족들이 완전 짠돌이야.”고 내뱉다가 “너도 이제 완전히 망가졌구나”고 탄식을 하는 선배 말에 충격을 받고 장례 일을 그만두는 이야기. 공제조합형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죽음을 새롭게 알아가는 이야기는 삶의 존엄을 되새기게 한다.

장례 기간이 43일이나 되었던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부의 장례지도사였던 사람의 눈에 비친 풍경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례조의금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무연고자의 장례에 기탁한 의료사회협동조합 이사장이자 인하대 의대 교수 임종한의 이야기는 장례식장의 부조리도 언급한다(201쪽). 노인들을 대상으로 ‘삶을 기록하는 기억 노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과정을 적은 우은주.

책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워 눈물을 줄줄 흘렸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달 만에 자살한 여동생. 그 딸이 죽은 지 1달 만에 또 자살한 어머니 이야기다. 요약하면 이렇다. 아버지와 딸은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다정하고 다정했다. 딸의 진로문제로 다투다 딸이 집을 나가 의절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딸은 울지도 못하고 어머니 뒤에 숨어 얼굴을 감추었고 그 뒤로 우울증약을 먹고 지내다 자살한 것이다. 어머니도 그대로 딸의 뒤를 따랐다. 글쓴이는 말한다. “미안해요”라는 말과 “죄송해요”라는 말이 장례식장에 온 유족 모두의 공통어라고 말하면서 살아서 충분히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용기 내서 말하자고.

장례식장이 아닌 동네 장례를 치른 유종오의 글은 출생과 결혼과 진학과 승진을 삶의 공간에서 받아들이듯 죽음도 일상생활과 분리하지 말고 기꺼이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이자는 제안이라 보인다(122쪽).

자연계의 거대한 사슬로 보면 죽음은 소멸이라기보다 변화라고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시간들은 죽어가는 순간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아니겠는가. 그 죽음이 나에게 묻는 안부에 “응. 좋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온유와 겸손 배우며, 시간의 무게 알아채는 때…'노년'

▲ 남아 있는 시간을위하여
김형석, 김영사,
2018, 1만3000원.

나는 김형석이라는 신문 배달 소년을 기억한다. 도쿄 거리에서 비 오는 날에 신문이 젖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집집마다 이른 새벽녘 신문을 배달하는 조선의 소년 김형석.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5권짜리 그의 전집은 나의 미래에 꿈과 동경을 안겨 주었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였다.
나는 자라면서 ‘정치경제학’ 책에 빠지게 되었고 ‘김형석류의 책’은 경시했고 멀리했다.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책을 펼치면 자애로운 인격자의 노변정담을 듣는 듯하다. 해가 지는 서쪽 노을에 발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스승과 산책하는 기분이다. ‘온유와 겸손’. 이 말이 꽂혀 온다. 135쪽이다. 성도라고 불리는 게 겸연쩍어 교우라 불리고 싶다고 하면서 성자 프란체스코의 사례를 소개한다. 예수의 삶에서 우리가 따르고 배워야 할 미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 첫째가 ‘온유와 겸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둘째가 뭐냐고 물으니 둘째는 ‘온유와 겸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셋째도 넷째도.

올해가 100살. 늙음과 외로움과 상념과 소외를 잘 다듬고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노철학자와 만나는 시간이 되리라 본다.

▲ 늙어감에 대하여
장 아메리, 김희상옮김
돌베개, 2014,1만2000원.

문득 어느 노인회관에서 본 글귀 하나가 떠오른다.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하라. 자랑하지 말고 고집부리지 마라. 젊게 살려면 젊은이 말 들어라 등. 노인의 이런 자기 다스림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노인을 죄인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감에 대하여>의 책 저자는 전혀 다르게 노년과 죽음을 얘기한다.

2차 대전 독일치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작가다. ‘시간 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허무’라는 대목과 ‘우리는 늙어가며 시간을 발견한다’는 대목에서 독자는 크게 공감하게 된다. 시간은 결코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80살이건 20살이건 산술적 단순비교는 안 된다고 한다.

늙음은 무엇인가. 시간의 무게와 죽음은 무엇인가. 시간을 알아채는 시기가 노년의 삶에서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낯선 자기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늙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을 저자는 ‘진실’이라고 안내한다. 유혹에 휩쓸리고, 욕망을 남발하며 살다가 늙어 갈 때는 위로와 돌봄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가자고 한다. 사람에게 죽음 그 자체보다는 죽어간다는 게 더 두렵기 때문이다.

“젊어서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늙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젊어서 죽고 싶지 않으며 늙으려 하지도 않는다(209쪽). 이 모든 것을 진리의 눈으로 보자고 한다. 늙음이 달리 보일 것 같다.

/생태영성운동가. ‘엄마하고 나하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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