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9가지 트라우마
김성민 외.
패러다임북.20,000원

식민지·분단·전쟁 등
우리 현대사 9가지 트라우마
인문학적 분석으로 접근


우리나라가 2003년부터 14년째 전 세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불명예가 있다. 자살률이다.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출산장려와 아동수당 지급으로 인구 감소를 막아보려 하지만 높은 자살률은 암이나 산재, 교통사고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이 현상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사회적 스트레스로 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을 한국 현대사가 배태한 역사적 트라우마인 집단 무의식에서 찾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9가지 트라우마(김성민 외. 패러다임북. 20,000원)>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 터무니없는 평양올림픽 논란을 만들어내는 반북 현상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내재된 역사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단단하고 뿌리 깊은지 돌아보게 한다. 

개인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으면 몸과 마음에 흔적이 남고 삶이 왜곡된다. 신체적 장애와 함께 불안, 불신, 공격, 체념, 증오 등의 증상에 시달린다. 한 사회나 민족도 그러하다는 게 이 책의 기본 인식이다. 우리나라 현대사 100년은 견디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대표적인 9가지 상처를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식민지 경험, 분단, 전쟁, 이산가족, 성장신화, 학벌주의 등을 총론과 함께 열 명의 전문가들이 나누어 집필했다. 이 아홉 가지 역사 트라우마는 우리사회와 구성원의 삶을 변질시키고 왜곡할 뿐 아니라 새로운 트라우마를 확대하여 재생산한다고 진단한다. 제대로 치유되지 못함으로 해서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이 섬뜩하다. 

피식민지배의 경험은 분단을 낳았고 분단은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720만이라는 대규모의 한민족 유랑민을 만들었다. 어디 이 뿐인가. 분단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남과 북은 공히 엄혹한 국가폭력체제를 구축했다. 이 같은 국가폭력 체제도 이 책은 중요한 역사 트라우마에 포함시킨다.

공권력이 그 주체인 국가폭력은 개인 폭력보다 훨씬 위험하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집단의 지성을 마비시키면서 대량의 살상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바로 군대, 정보기구, 경찰, 판사, 공무원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관변조직들이다. 어떤 경우는 법의이름으로 ‘대량 사법살인’을 저지른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을 구현한다. 뒤늦게 명예가 회복되고 재심이 열려 무죄가 선고되지만 복원할 수 없는 원죄를 이 사회는 안게 된다. 

우리의 사회현상과 집단의식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이 주제들은 원래 책으로 나오기 전에 2014년에 건국대학교의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 ‘푸른역사카데미’라는 강좌로 진행했던 것이다. 우리의 통일의 문제, 분단모순을 정치역사학이나 사회학으로만 접근 할게 아니라 대중의 삶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강좌였다. 

‘잘 살아 보세’라는 성장 신화가 남긴 상처를 분석한 성균관대학교 강사인 이광일은 성장제일주의가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만든 심리적, 정신적 상흔을 분석한다(211쪽). 지리적 분단만이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분단현실을 직시하면서 ‘사람의 통일’을 강조하는(352쪽) 통일인문학 단장 김성민의 치유법은 경청할 만하다.


|함께 보면 좋은 책

마을에서 치러진 전쟁들
증오가 증오를 부른 참상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돌베개. 17,000원

흔히 전쟁이라고 하면 전쟁무기와 함께 군인을 떠올린다. 당연히 사망하거나 상처를 입는 사람도 군인일 것으로 여긴다. 이런 통념을 뒤집는 전쟁이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이다. 민간인이 군인보다 훨씬 많이 죽은 전쟁은 한국전쟁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다. 군인으로 형성된 전선에서 전쟁이 치러진 게 아니고 마을에서 전쟁이 치러졌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전투라기 보다 학살이 이루어졌다.

오죽하면 화가 피카소가 1951년에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라는 작품을 만들기까지 했을까. 

그래서 이 책은 제목도 ‘마을로 간 한국전쟁’이다. 제1장은 진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1950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167명이 죽은 내막을 파헤친다. 인민군이 내려 올 때 경찰이 보도연맹원 출신 5명을 학살한 것이 도화선이었다고 한다. 인민군이 철수할 때 대대적인 우파에 대한 보복이 있었다. 곧장 경찰이 들어오자 대대적인 반 보복이 자행되었다. 

2장에서는 영암의 한 고장을 살피고 있다. 한 종씨 내에서. 이념과 종교, 일가의식, 씨족과 타성, 신분과 재산 등이 실타래처럼 얽힌 곳에 남쪽권력은 토벌대와 경찰, 우익청년대. 북쪽권력은 인민위원회, 각종 연맹, 치안대. 이 같은 기관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참상이 진행된다. 증오가 증오를 불러 온 결과다. 처음에는 피해자였다가 나중에는 가해자가 되었고, 처음에는 가해자였다가 나중에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것이 반복되었다. 

개인이든 사회든 갈등과 대립이 있다. 어떻게 이를 현명하게 푸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했지만 온전한 치유는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민화·전설·설화·동화…
닮아 있는 남과 북 옛이야기

남북이 함께 읽는 우리 옛이야기
김종군 외. (주)박이정. 18,000원

<남북이 함께 읽는 우리 옛이야기(김종군 외. (주)박이정. 18,000원)>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남과 북에 있는 민화와 전설, 설화, 동화를 유사한 대목끼리 한데 묶은 책이다. 우리에게는 '선녀와 나무꾼’이 있고 북에는 ‘금강산 팔선녀’가 있다. 줄거리는 비슷하나 주인공의 역할과 주도성은 약간 색다른 게 재미가 크다. 북에서는 여성의 역할과 주도력이 도드라진다. 남에서는 천상과 지상의 경계가 엄격하다. 그러나 공히 약탈적 소유욕을 지녔던 남성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희망은 똑 같다.

북에 ‘생명수’가 있고 남에는 ‘바리공주’가 있다. 두 설화에서는 똑 같이 꽃이 등장하는데 숨살이꽃,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이다. 꽃 이름에서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영통함을 읽을 수 있다. 설화 속에 순 우리말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는 것 역시 남과 북이 같다. 

남과 북, 동네와 동네, 계층과 계층이 역사의 트라우마를 동심어린 순수한 설화 속 주인공이 되어 치유해 나가자는 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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