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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서재]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 10가지 시선으로 돌아오다
   
▲ <<리영희를 함께 읽다>> 창비 펴냄

그는 기자였다. 비평가였고 학자였다. 2010년에 돌아가신 리영희선생 이야기다. 세상에는 기자도 많고 학자도 많고 비평가도 많지만 고 리영희선생 같은 사람은 드물다. 해직교수였고 해직기자였던 데서 그의 삶의 역정을 알 수 있다. 그 전에는 군인이었다. 해군의 통역장교로 7년을 복무했다.

그의 주저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잠수함과 토끼 이야기에 자신도 잠수함에 태워진 토끼처럼 이 사회의 위험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용기를 내서 소리 높여 외치고자 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리영희에 의해 새로이 해석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부도덕함을 가장 먼저 드러낸 그의 글을 읽고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과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를 ‘사상의 은사’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10명이 집필자로 나서 다양한 측면에서 리영희를 다시 불러 온 책이 ‘창비’에서 나온 《리영희를 함께 읽다》이다. 지난 5월에 출간되었으니 그가 세상을 뜬지 꼭 7년 되는 해에 리영희의 사상과 삶을 재구성한 셈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그의 사상과 철학을 다루고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병권,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인 구갑우 등이 리영희의 사상철학과 통일문제 등을 썼다. 다른 글들도 다 작년에 리영희재단과 창비학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리영희 함께 읽기’ 강좌의 내용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서슬 퍼런 대쪽 선비로서의 리영희 본 모습은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로 기억된다. 나라가 반북과 반공으로 미쳐 돌아갈 때 그는 북방한계선(엔엘엘)이 그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한계를 까발렸다. 결코 해상국경선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거짓의 역사법정에 내미는 고발장과도 같았다. 글을 읽으면서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사망사건이 났을 때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원천적 불평등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미국정부의 이중성도 따졌다. 베트남전쟁도 조작하여 일으킨, 세계의 깡패 같은 미국에 대해 회초리를 든 모습이었다. 이 순간 독자들의 자각을 개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우상을 깨고 이성으로 거듭나는.

그 리영희선생을 나는 1986년 초여름에 이틀간 같이 지냈다. 인천 5·3항쟁 수배자가 되어 ‘동지’의 손에 이끌려 숨어들어 간 곳이 뜻하지 않게도 선생의 집이었다. 그 인연으로 선생의 투병생활에도 관여하여 자연치유를 권하기도 했었고 장례도 지켜보게 되었다. 

이 책의 3부에서 성공회대 교수 최영묵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또한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사실상 ‘꼭두각시’가 되었고 미·중·일·러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반도를 약탈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략) 위안부·역사교과서·자위대 문제에서 드러난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핵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한국 수구세력의 반민족성”을 언급하면서 “리영희의 ‘사자후’는 지금도 울리고 있다.”고 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청년활동가 홍섭엽의 일기
심취한 동학수련에 대해 써

《맑은 영혼 홍성엽》학민사 펴냄

《맑은 영혼 홍성엽》과 《망명-윤한봉의 회고록》이 엇비슷하다. 둘 다 민주화과정에 참여했고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앞의 책은 ‘학민사’에서 2006년에 나온 홍성엽의 일기체 유고집이고 뒤의 책은 2009년 ‘한마당’에서 나온 5·18광주항쟁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의 기록물이다. 한 인간을 친구로 알아가는 통로가 되는 책이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 때문이었을까. 홍성엽은 그 유명한 1979년 와이엠시에이 위장결혼사건의 신랑이었고 당시에 27세였다.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피살되자 전두환이 군부를 동원해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 국민적 저항을 조직하는 기획 사건이었는데 홍성엽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다.

일기는 저자의 꾸며지지 않은 속마음이 잘 드러나서 읽기 편하다. 책은 1,2부로 구성되는데 1부가 일기들을 시기별로 묶은 것이고 2부는 홍성엽이 1988년부터 동학에 심취하여 영적자각과 동학수련에 대해 쓴 글이다.

청년 활동가의 고뇌와 다짐이 곳곳에 엿보이지만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5년 만에 삶을 마감한 젊은이의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한편 불안해졌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의 상태를 관조하고자 하였다. 이제는 살아있음의 삶만이 아니라 죽음을 포함한 삶으로 나의 삶을 넓혀야 할 시점이다.”

“통증은 느끼되, 아픔에 정신을 뺏기지 않고 아픈 감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나의 정신, 아픔을 지켜볼 수 있는, 깨어 있는 성성한 나의 영혼.”(245쪽)

화악산 수도원에서 월산선생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수행자로 살려 했던 모습이 글 속에 깃들어 있다.

   
5·18광주항쟁 수배자의 기록
다큐멘터리 영상 보는 듯 생생

《망명-윤한봉의 회고록》한마당 펴냄

뒤의 책 《망명-윤한봉의 회고록》은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보는 듯하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수배자가 된 윤항봉이 적도를 두 차례나 오가며 35일간의 항해 끝에 밀항에 성공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기록들이 실감난다. 그 과정에서 발병한 것으로 여겨지는 폐기종으로 윤한봉은 일찍 삶을 마친다. 민주화운동 하면서 가중된 심적, 신체적 부담이 결국 생을 단축시켰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윤한봉이 1993년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열혈청년의 눈에 비친 미국의 타락상과 문화차이를 격정적으로 얘기하던 모습이 선하다. 작은 체구에서 내 뿜던 열기가 대단했다.

그의 숨 막히는 밀항선에서의 은신은 간발의 차이로 체포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비밀 승선한 윤한봉을 목숨을 걸고 밀항을 도운 2등기관사는 나의 고교 은사인 정찬용선생의 동생 정찬대였다. 김동현과 함께.

미국에서 동포사회의 보수성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한인 청년운동을 해 나가는 애로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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