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마음치유농장 대표.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한국농어민신문] 

시인·동학전문가·사형수·변절자…
“천상·지상에 양발 걸치고 살아
그가 감내해야 할 짐 컸을 것”

김지하 전집 제2권-사회사상: 생명·환경·자치·통일(김지하전집 발간·편집위원회, 실천문학사, 2002, 3만5000원.)
김지하 전집 제2권-사회사상: 생명·환경·자치·통일(김지하전집 발간·편집위원회, 실천문학사, 2002, 3만5000원.)

김지하. 참 무거운 이름이다.

“…(전략) 사형이 구형되었다. 나도 웃었다. 김병곤이의 최후진술이 시작되었다. 첫마디가 “영광입니다!” 였다. (후략)…." 이 글.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김지하의 옥중수기 ‘고행 1974’를 나는 고등학교 때 읽었다. 급우들끼리 몇십 원씩 걷어서 동아일보를 구독하면서 사설 읽기를 하던 중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이를 권해서다.

이때의 김지하는 나에게 혁명가였다. 마침 민청학련사건으로 15년을 선고받았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서 곧장 우리 학교에 온 대학 졸업장도 없는 빡빡머리 선생도 있었다. 우리는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우리보다 머리가 짧았다.

시인, 문명운동가, 동학전문가, 변절자, 전통문화부흥가, 사형수, 저항시인. 이 책 <김지하 전집…>은 사상가이자 철학자로서의 김지하를 볼 수 있다. 제1권은 크게 동학, 율려, 전통사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 2권은 생명, 환경, 자치, 통일로 나누어진다. 내가 2권을 고른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그의 맑고 날카로운 시선과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글을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최치원은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했다. 군생은 인간과 동식물, 무기물 전체를 가리키는 중생이다. 인간의 갖가지 생산활동과 소비, 문화, 영적 생활 등 뭇 삶의 양태를 가리킨다…(중략)…접은 개방적인 소공동체다. 화는 영적·도덕적 생명 운동이다.”라고 했다.(183-4쪽). 김지하의 ‘생명’ 무게를 보게 된다. 녹색대학 총장을 했던 장회익의 말을 빌리자면 낱 생명이 아니다. 온 생명이다.

따라서 김지하에게는 타자로서의 생명이 아니다. 그는 ‘모심’이라고 했다. 그것도 서로 모심이다. 동학 해월의 ‘이천식천’이다. "모심은 존재와 인식과 관계의 비밀이며, 생명과 신의 수수께끼다. 생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심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심인가. 김지하의 답은 ‘허공’이다."(머리글).

참 어렵다. 알쏭달쏭하다. 그의 책 ‘아우라지 미학의 길’이나 ‘초미’를 보면 더하다. 예언서 같기도 하고 현실에 대한 우주적 해석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난달 22일, 그가 환원(동학에서는 원래 자리로 갔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렇게 부른다.)한 지 14일째 되는 날에 함양 어느 절에서 열린 김지하 추도식에서 같이한 20여 동지들에게 ‘시인은 천상과 지상. 두 세계에 양발을 걸치고 살지 않았나 싶다. 그가 감내해야 할 짐이 그래서 컸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책에서 김지하는 이렇게 정리한다.

“일체 자연생명을 신령한 것으로 공경하는 생명윤리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환경운동은 이제 생명으로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364쪽).

비록 읽기에 두꺼운 책이지만 김지하를 뉴스로만 접하던 사람들. 글도 듬성듬성 읽었던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 그가 어떤 바람과 인식과 사유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바다’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전국의 김지하 책 8권을 읽으면서 이 책을 으뜸으로 삼은 이유기도 하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숨 죽여 가며 남몰래 써야 하는 이름 ‘민주주의’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아킬라미디어. 2016. 1만2000원)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아킬라미디어. 2016. 1만2000원)

책의 제목이기도 한 <타는 목마름으로>의 일부다. 숨을 죽여 가며 남몰래 써야 하는 이름, 민주주의. 이 시집은 1975년에 초판이 나온 뒤 출판사를 달리해가며 여러 판본이 나왔다. 시는 총 4부로 제1부 황토 이후, 제2부 황토, 제3부 황토 이전, 제4부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한 편 한 편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한 쪽을 장식한다. 그의 첫 시집이다. 옥중에 있을 때 출간되었고, 판금대상 도서로 지정되어 시집마저 수난을 겪어야 했다.

같이 실린 ‘푸른 옷’ 을 보자. 푸른 옷은 죄수들이 입는 옷이다. 혁명가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저 신록 같은 시어들이 가슴 저민다.

“새라면 좋겠네/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야윈 알몸을 가둔 옷…(중략)/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흰 그늘의 길 1-3. 김지하 회고록(김지하. 학고재. 2003. 각 1만3000원)
흰 그늘의 길 1-3. 김지하 회고록(김지하. 학고재. 2003. 각 1만3000원)

<흰 그늘의 길>은 세 권으로 된 김지하의 자서전이다. 자기 손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동아일보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된 글들이다. ‘예감’ 이나 ‘화두’를 고르려다가 아무래도 독자들이 김지하를 쉽게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골랐다.

그의 이야기는 해방, 6.25, 남로당, 그리고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지는 굴곡진 현대사를 뼈대로 하고 있다.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그때’의 이야기, 알 수 없는 공포와 이유 없는 불안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음독. 여자들. 해방. 어머니. 붉은 악마. 흰 그늘. 동학과 생명론 등 작은 소제목들이 빼곡하다. 골라 읽어도 좋다.

“…한 이층 찻집 어둑한 귀퉁이에서 서투른 몇 마디로 청혼했을 때, 천천히 허락이 떨어졌을 때, 내가 펑펑 눈물을 흘린 건 사랑 이전에 누군가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장차 감히 사랑 가까이 내가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 때문이었다.”(제2권. 261쪽. ‘사랑’ 꼭지).

김지하. 그의 “ 장례식장이 참 쓸쓸했다.”라고 들었다. 6월 25일 오후 3시에 종로구에 있는 천도교 대교당에서 김지하 추도식이 열린다. 그와 한 시대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초대장에 이름을 올렸다. 김지하. 새 시대를 여는 생명 기운을 그가 나눠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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