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언덕 너머로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하우스에는 토마토, 가지, 고추가 심긴 모종판이 하나둘 늘어난다. 괭이를 들고 밭에 가는 길에 활짝 핀 복사꽃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감자밭에 가보니 어느새 감자 새싹이 빠끔 올라왔다. 봄이 부지런히 흘러가고 있다.

봄꽃을 보면서 마을 어른들은 걱정스런 표정이다. “이게 무슨 일이여. 올해는 매화고 목련이고 벚꽃이고 한꺼번에 싹 다 피어 부럿어. 이러다 이팝도 피것어!” 

이른 봄, 매화가 피면 햇살에 어렴풋이 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매화가 질 즈음에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면 이팝꽃이 핀다. 봄꽃도 피고 지는 흐름이 있다. 그런데 추웠다가 더웠다가 이상한 봄 날씨에 꽃들이 때를 모르고 피는 걸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 노린재들 좀 봐. 겨울이 안 추워 농께 벌써 나와서 난리여. 저걸 다 우째?” 노린재는 콩꼬투리에 즙액을 다 빨아 먹어 콩이 들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거두어들일 것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우기로 악명이 높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곳곳에 산불 소식이 들린다. 얼마 전 합천 용주에 큰불이 났다. “합천에 불났다는데 괜찮아?” 친구들한테 안부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오늘은 홍성에 사는 친구에게 내가 안부를 묻는다. “홍성에 불이 났다는데, 괜찮은 거지?” 꽃을 보면 마냥 좋다가도, 꼬리를 무는 걱정에 심란한 봄이다.

점점 더 기후 위기가 눈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며 힘이 빠질 때, 숲밭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요즘 나는 숲처럼 순환하는 생태계를 가진 숲밭을 일구고 있다. ‘먹거리 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숲밭에는 일년생 작물이 아닌 다년생 나무와 꽃, 허브와 풀을 심는다. 고정 이랑을 만들고, 땅을 갈지 않는다. 그렇게 숲밭에 뿌리 내린 다양한 생명이 계속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숲은 미기후를 만들고, 살아 있는 흙은 탄소를 저장한다. 기후 위기가 닥친 지금, 우리는 숲을 지키고, 숲을 더 많이 만들어 자연을 다시 연결해야만 한다.

지난가을에 숲밭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얼핏 보기에는 나무라기보다 막대기에 가깝다. 숲밭에 갈 때마다 ‘이 막대기는 살아 있는 걸까? 겨울에 반짝 추위가 지나갈 때 얼어 죽어버린 건 아닐까?’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나뭇가지에 돋아난 새잎을 만났을 때, “너 살아 있구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과나무, 살구나무, 이팝나무, 자두나무, 화살나무…. 하나둘 나무에 잎이 돋아나면서 숲밭에 푸른 기운이 차오른다. 가느다란 벚나무가 저도 벚나무라고 하얀 벚꽃을 피웠고, 튤립과 수선화가 뽀독뽀독 자라더니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혔다. 아침마다 숲밭을 내다보면 다른 색깔 튤립이 피어 있다. 숲밭에 있으면 살아 있는 생명의 기운이 온몸 가득 느껴진다. 막대기 같은 나무를 심을 때는 숲밭에서 처음 맞이하는 봄이 이렇게 강렬할 줄 몰랐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숲밭을 걸으며 자라는 모양을 들여다 본다. 새로운 잎, 새로운 풀, 새로운 꽃을 만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며칠 전에는 ‘시시숲’이라고 숲밭 이름을 지었다. 숲밭을 부를 이름을 고민하다가 번쩍 떠오른 이름이다. 이곳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가득 쌓이는 숲이었으면 좋겠다. 시시때때로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알맞은 시와 때를 잘 아는 숲이었으면 좋겠다. ‘나답게 살면 되지. 시시해도 뭐 어때?’라는 의미도 있다. 시시숲에서 알맞은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고 싶다. 시시해도 괜찮으니 나를 잃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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