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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작은 동네를 넘어 지역으로

[한국농어민신문]

청년농부 김예슬

지역과 사람은 같은 의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만든다. 옥천에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공동체와 일자리와 어른이 있었다. 옥천을 이루는 공간과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 옥천을 머물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었다.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시골 발굴 in 옥천’ 캠프에 다녀왔다. 2030세대를 위한 농촌 미디어를 만드는 ‘헬로파머’에서 기획한 캠프였다. ‘옥천신문사와 월간 옥이네’를 통해서 옥천이라는 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농촌 이야기를 담아 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옥천에서 캠프가 열린다니 반가웠다. 7월 둘째 주면 콩을 다 심어 놓고 잠시 여유가 있을 때라, 편안한 마음으로 캠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캠프 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밭에 나갈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다섯 시 반 쯤 집을 나섰다. 합천에서 진주, 진주에서 대전, 대전에서 옥천. 우리 마을에서 옥천에 가려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했다. 산골에 살다 보니 이제 이 정도는 익숙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는 길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가만히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 보니 어느새 옥천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조금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먼 길을 훌쩍 떠나온 기분이 마냥 좋았다.

지역 문화 창작 공간 ‘둠벙’에 모여서 캠프가 시작 되었다. ‘읍내에 이런 공간이 있구나.’ 생각하며 이곳저곳 돌아보았다. 캠프를 함께하는 사람은 스무 명쯤 되었다.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 조금 긴장이 됐다. 어디서 어떤 고민과 이야기를 안고 오신 분들일까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첫째 날은 용암사와 부소담악, 생활 폐기물 처리장을 둘러보았다. 옥천의 자연을 볼 수 있었던 용암사와 부소담악도 좋았지만 폐기물 처리장에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서 가 보기 어려운 곳을 캠프를 통해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옥천에 머무는 동안 버리는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매립지에서 나오는 가스를 빼기 위해 땅에 박아 놓은 까만 기둥들을 보면서 내 손에서 버린다고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생각했다.

둘째 날은 모둠을 나누어 옥천을 둘러보았다. 안남 배바우 마을 공동체, 호미네 목장, 옥천신문사와 월간 옥이네 가운데 각자 궁금한 곳을 선택했다.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옥천신문사와 월간 옥이네에 다녀왔다. 월간 옥이네 표지에 쓰인 ‘시시콜콜한 시골 잡지’라는 소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옥천신문사와 월간 옥이네에서는 청년들이 일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옥천신문 황민호 국장님은 청년을 많이 고용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하셨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말씀은 지금도 자꾸 꺼내어 생각해 보게 된다.

옥천신문사는 농촌에서 살아가고 싶은 청년들이 일하며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이 되고 있었다. 농촌에 농사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황민호 국장님이 옥천의 특산물은 옥천신문이라고 하셨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실제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국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론의 가치와 윤리를 지키는 신문사가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 귀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천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 보면 옥천신문이 계산대 앞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신문이구나.’ 생각했다. 옥천신문은 어떻게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이 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보통 지역 신문이 있어도 지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옥천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면 지역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과 소리가 담겨 있었다. 함께 풀어야할 지역 문제부터 이웃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고 따뜻한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옥천에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생겼을 때 믿고 소리 낼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겠구나 싶었다.

옥천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이 옥천을  많이 아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합천에 살고 있지만 아직 합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모르는 만큼 애정도 적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우리 식구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다. 합천은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닿게 된 곳일 뿐이었다. 합천에서는 내 또래 청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 청년들이 농촌 이주를 고민할 때 합천은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다. ‘옥천과 합천은 무엇이 다른 걸까? 옥천에 모이는 청년들이 왜 합천에는 올 수 없는 걸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지역과 사람은 같은 의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만든다. 옥천에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공동체와 일자리와 어른이 있었다. 옥천을 이루는 공간과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 옥천을 머물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동네를 넘어 지역에 대해 알고, 애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촌에서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기다리는 한 청년으로서 우리 지역을 조금 더 살고 싶은 곳, 또 살 수 있은 곳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합천에도 잃지 말아야할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어른들이 있다. 청년들에 대한 관심도 많다. 내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면 늘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시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합천에 계신다는 것만으로 합천을 아끼고, 가꿀 수 있는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 시작과 끝에 내가 농촌으로 이주한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 그림에는 내가 무얼 하고 살 것인지를 그린 사람이 많았다면 캠프를 마치고 그린 그림에는 어떻게 ‘우리’가 되어 살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많았다. ‘지역’에 눈을 돌리고 함께 잘 사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을 얻어가는 캠프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과 어울려 살고 싶지만 살아 보니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에 녹아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살고 싶은 삶터를 새롭게 그려보는 기회가 되었다. 내 앞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길이 열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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