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비 한 방울이 귀한 겨울이었다. 온 대지가 말라 양파와 마늘이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더구나 곳곳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아 더 애가 탔다. 바짝바짝 마르는 양파밭을 가만두고 볼 수 없어 호스를 연결해 물을 주었다. 하지만 하늘이 내려주는 비를 대신하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며칠 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보슬보슬 내리는 첫 봄비였다. 하우스 안에서 키우던 모종들을 바깥으로 꺼내어 비를 맞게 해주었다. 나도 봄비가 반가워 새싹들 옆에 잠시 앉아 같이 비를 맞았다. 하우스 안에서는 상토 위로 고개를 내민 토마토, 고추, 가지, 파프리카 새싹이 자라고 있다.

오늘은 완두와 다양한 잎채소 씨앗을 뿌렸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완두 심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친구 농장에서 완두 심는 모습을 보고 부랴부랴 나도 완두 씨앗을 찾았다. ‘깜빡해서 미안.’ 사과하면서 한 알 한 알 완두를 심었다. 해마다 넣는 씨앗인데도 종류가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 놓치는 것이 있다. 그래도 봄이 오면 씨앗을 뿌리는 친구들이 곳곳에 있어 심는 때를 아주 놓치진 않는다.

어느새 아홉 해째, 씨앗에 싹을 틔우는 일로 봄맞이를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때다 싶을 때 싹이 트지 않으면 애가 탄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씨앗이 제때를 알고 새싹 키워낼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면서도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른 토마토는 떡잎이 다 올라왔는데, 진안 노랑 토마토는 아직 소식이 없어.” “아마 싹을 많이 틔워 심은 씨앗이 먼저 나왔을 거야. 먼저 자란 싹이 오히려 웃자랄 수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곧 나올 거야.” “언제쯤 마음 졸이지 않고 여유롭게 씨앗을 기다릴 수 있게 될까?” “나도 십 년째 농사짓는데 해마다 동동거려. 내가 그러면 할머니가 옆에서 다 때가 되면 지가 알아서 나온다고 하셔. 우리 할머니는 예순 해를 훌쩍 넘게 농사지어 오셨으니까 그 정도 내공은 쌓여야 하나 봐” “우리는 아직 한참 멀었네.”

친구와 전화하며 한참 이야기 나누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할머니처럼 알맞은 때를 느긋이 기다리는 힘이 생길 거라 기대해 본다. 

해마다 씨앗은 내가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받아둔다. 혹여나 “검은 완두 씨앗 받았어? 나 이번에 씨앗을 밑졌어.”하고 연락이 오는 친구에게 나누어 줄 씨앗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봄을 앞둔 겨울 끝자락에는 씨앗 나눌 일이 많아진다. 봄 농사가 바쁘게 시작되기 전,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씨앗을 나누었다.

친구들과 방바닥 가득 씨앗 봉투를 펼쳐 두고 씨앗을 들여다보는 그 시간이 좋다. 그렇게 나누어진 씨앗은 친구들이 사는 지역 곳곳에 심긴다. 친구가 “서와한테 받아온 씨앗들 이렇게 자라고 있어.”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줄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리고 기도하게 된다. 기후 위기로 올해도 만만치 않은 날씨를 견뎌야 할 테지만 무사히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말이다.

친구는 새로운 씨앗이 생길 때면 “나만 심으면 밑질 수 있으니까” 하며 나에게 씨앗을 나누어 준다. 나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씨앗이 생기면 나 혼자 심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씨앗을 심는 사람이 많아지면, 씨앗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날마다 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 지구에서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씨앗도, 씨앗으로 연결된 관계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면, 씨앗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무어 하나라도 내가 더 좋은 걸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애쓰는 세상에서, 나눌수록 강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따뜻하다. 그 사실이 계속 나를 농부로 살아가게 한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씨앗에 싹을 틔우고, 새싹을 기다리고, 마침내 세상에 고개를 내민 연둣빛 생명을 돌보고 있다.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올해도 무사히 씨앗이 씨앗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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