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우리에게 농지가 생겼다니! 꿈만 같다.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땅이 아니라, 어떤 나무를 심어 가꿀까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우리 땅이다. 더디지만 이렇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싸아락 싸아락.’ 해마다 겨울이 깊어 가는 이맘쯤이면 내 방은 콩 고르는 소리로 가득 차오른다. 쥐눈이콩, 아가콩, 선비자비, 오리알태, 아주까리 콩…. 지금은 쥐눈이콩을 고르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쥐눈이콩이 잘아서 콩을 고르는 데 한참이 걸린다. 작은 콩들 가운데 그나마 알이 잘 찬 콩은 씨앗으로 남기기 위해 따로 모으고 있다. 그렇게 씨앗을 모두 갈무리한 뒤에야 비로소 ‘올해도 무사히 씨앗을 남겼구나’하고 마음이 놓인다.

씨앗들과 함께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보내는 이 시간이 어느 해보다 설렌다. 드디어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농지를 샀기 때문이다. 합천에 와서 농사를 지은 지 여섯 해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 농지를 빌리고, 다시 빌리고, 땅을 새로 일구고, 또 일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랫동안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온 땅이라 흙을 살리고 가꾸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우리 손길과 노력이 그 땅에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우리 식구가 산 농지는 세 필지로 나누어져 있다. 농지원부를 받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기 위해서 아버지, 나, 그리고 남동생 이름으로 세 필지를 따로 계약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에게만 농지원부가 있었다. 아버지 앞으로 농지원부가 생긴 지도 몇 해 되지 않았다. 밭은 빌려 주어도 농지원부까지 내어 주는 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내 이름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왔다 해도 행정상 나는 ‘무직’ 백수였다. 심심치 않게 직업학교에서 연락을 받고는 했다. 마을 농부님들이 “드디어 예슬이도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농부가 되겠네!”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다.

마음에 맞는 농지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농지를 찾았다고 뚝딱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농지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아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땅값은 자꾸 올라만 갔다. 이 마을에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더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농지를 살 수 있는 돈을 빌리거나 지원받을 정책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은행과 농업기술센터, 군청을 몇 번이나 오고 갔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은행의 높은 이자를 감당하는 것도 너무 큰 부담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행복하게 농사짓고 싶었다. ‘얼마를 벌어야 이자를 낼 수 있고,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농사지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빌린 농지에서 짓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음 놓고, 신명 나게 농사를 짓고 싶은 것이지, 꼭 내 이름으로 된 농지를 가지는 것이 목표는 아니니까 말이다.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깊어 갔다. 답답한 마음에 지금 상황을 가까운 분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끼리 끙끙 안고 있기보다 고민을 나누다 보면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우리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 몇 분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농지를 살 수 있도록 무이자로 돈을 빌려 주시겠다고 했다. 여섯 해 전,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터를 옮겨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었다. 청년 농부인 나와 남동생 수연이가 돈 때문에 지치지 않고, 농사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무이자로 이렇게 큰돈을 빌린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그분들이 선뜻 내어 주신 큰마음 덕에 농지를 살 수 있었다. 마음 한쪽에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도 있다. 하지만 흙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는 농부로 살아가려는 우리 삶을 지지하는 분들이 내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은행에서 돈을 빌린 것과는 마음가짐이 아주 다르다.

우리에게 농지가 생겼다니! 꿈만 같다.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땅이 아니라, 어떤 나무를 심어 가꿀까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우리 땅이다. 더디지만 이렇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혼자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면 이 걸음들이 더 더디고, 힘겨웠을지 모른다.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나동그라지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올 수 있었다. 부모님과 삶의 방향과 가치가 많이 닮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청년이 부모님과 뜻이 맞는 것은 아니다. 농촌에서 삶을 꾸려가고 싶지만 혼자 오기 막막한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여섯 해 먼저 농촌에 살기 시작한 내가 작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과정이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꼭 해 주고 싶다. 다행이고, 고맙게도 이곳에는 청년이 스스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이웃 어른들도 계신다.

이제 막 우리 땅이 된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삶을 일구며 살아가게 될까? 여전히 더디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일단 오늘은 기분 좋은 상상을 펼친다. 자꾸 상상을 펼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날도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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