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서로 다른 다섯 사람이 모여 일하는 것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양파잼을 만드는 일도, 함께 일하며 호흡을 맞추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으니 당연했다. 그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저마다 상태를 표현하고, 조율해 갈 수 있어 고마웠다.

ㅣ 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지난 5월부터 성격유형검사(MBTI)를 공부하며 만나 온 친구들이 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다섯이다. 친구들은 농촌에서 살고 싶지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길을 찾기 어렵다 했다.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라는 질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으로부터 MBTI 공부가 시작되었다. 2주에 한 번씩 만나 공부 모임을 이어오다가 함께하게 된 일이 있다.

올해 양파 농사가 잘 되었다. 곳곳에 판매하고, 즙을 내고, 한가득 썰어 말리고도 양파가 많이 남았다. 이 양파로 무얼 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양파잼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양파로 잼을 만든다고?’ 낯선 일이었지만, 도전해 볼 만하다 싶었다.

혼자 어떻게 잼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다가 이 일을 같이 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어쩌면 양파잼을 만들어 판매해 보는 일이 ‘농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여는 물꼬가 되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같이 양파잼을 만들어 팔아 보면 어때?”하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재밌을 것 같아!”하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 주었다. 그때부터 맛있는 양파잼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양파를 갈아서 만들어 볼까?” “길쭉하고 얇게 써는 게 좋지 않을까?” “깍둑깍둑 썰면 어때?” 써는 방법부터, 얼마나 달게 할지, 어떤 맛을 더할지, 질감은 어떻게 낼지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우리 팀 이름을 정해서 양파잼을 팔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모아 팀 이름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러앉아서 A4 용지 네 바닥을 다 쓰고도 “이거다!” 싶은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댄 끝에 “오! 둥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여러 후보 가운데 투표로 뽑은 이름이다. 중복 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 이름만 다섯 표, 만장일치였다. ‘다섯 명이 둥그렇게 모여 재미난 일을 벌여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오! 둥글 양파잼’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양파잼 레시피를 결정하고 난 뒤, 주문을 받기 위한 준비가 이어졌다. 잼과 어울리는 병과 상자를 고르고, 라벨을 디자인하고, 양파잼 사진을 찍고, 설명을 쓰고, 주문 받을 방법을 정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또 주문 받아 주문서를 정리하고, 입금확인을 하고, 주문 완료 문자를 보내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친구들은 이렇게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 보는 일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맡은 역할이 늘었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 일하는 일머리가 생기면, 자연스레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역할이 나누어질 거라 했지만 친구들은 나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그 마음을 받으면서 어떻게 지혜롭게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서툴지만 찬찬히 함께하는 법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양파잼은 ‘열매지기 영농조합법인’ 작업장에서 만들기로 했다. 이웃 농부님들이 생강차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다. 지난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며 작업장을 새로 지었다. 영농조합법인을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 농부님들이 하셨던 말씀이 있다. “청년들이 없으모 무슨 재미로 귀한 돈 들여가며 공장을 짓겠노. 골치 아프고 힘들어도 너희들이 여기서 무언가 이루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었다 아니가. 우리 좋을라고 했으면 진즉 그만뒀다.”

“영농조합법인 작업장에서 양파잼을 만들어도 될까요?” 물었을 때, 농부님들은 잠깐 고민도 없이 “그럼! 너희를 위해서 만든 곳인데 당연하지.” 하셨다. 이 일을 해 보겠다 마음먹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잼을 만들 작업장과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실 농부님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농부님은 잼을 만들 때 쓰는 교반기 작동법을 알려주셨고, 어떤 농부님은 유기농 설탕을 지원해 주셨다. 밥 잘 챙겨 먹으며 하라고 텃밭에서 나는 갖가지 채소를 따다 주시기도 했다. 또 농부님 몇 분은 두 팔 걷어붙이고, 우리 마을 청년들이 만든 양파잼이라며 지인들에게 홍보를 해 주셨다. 덕분에 1차, 2차, 3차 주문까지 준비한 양파잼을 모두 다 팔았다. 나에게 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시는 분들이다.

서로 다른 다섯 사람이 모여 일하는 것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양파잼을 만드는 일도, 함께 일하며 호흡을 맞추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으니 당연했다. 그 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저마다 상태를 표현하고, 조율해 갈 수 있어 고마웠다. 돌아보면 혼자였으면 해 내지 못했을 일이다. ‘함께’라는 힘에 기대어 무사히 해냈다.
한 친구는 돈을 버는 일을 재미있게 해 본 건 처음이라 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고 말이다. 또 한 친구는 이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맙고 다행이었다. 내가 어느새 여덟 해째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오늘의 상상이, 즐거움이, 충분함이, 삶이 되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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