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무엇보다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을 환대하고 싶었다. 내가 농촌에 살면서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 ‘조건 없는 환대’였기 때문이다. 삶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까다로운 조건 없이 그냥 한 번 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것이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밥상을 거두려고 하는데 이웃 마을에 사는 봄날샘(서정홍 농부 시인)에게 전화가 왔다.

“슬아, 밥 묵었나?”, “이제 막 다 먹었어요.”, “그래. 오늘도 애썼제? 밥 잘 챙겨 묵어라. 의논할 게 있어서 전화했다. 다음 주 월요일 오전에 시간 괜찮나? 금산 간디고등학교에서 농촌에 살고 싶어 하는 친구 두 명이 온다고 허네. 올해 졸업하는 열아홉 살 친구들이다. 청년 농부인 네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좋지 않겠나?”, “네. 시간 비워 둘게요. 같이 이야기 나눠요.” 그렇게 약속을 잡았다.

월요일 아침, 비가 한바탕 지나가고 날이 갰다. 하늘에 흘러가는 커다랗고 하얀 구름이 보기 좋은 날이었다. 열 시쯤, 이웃 마을에 사는 동생 구륜이가 우리 집에 왔다. 산마을에 사는 구륜이는 식구들과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는 자립을 위해서 닭을 기르고 방사 유정란을 판매하고 있다. 봄날샘이 구륜이도 초대한 모양이었다.

구륜이가 오고 얼마 뒤에 봄날샘과 간디고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왔다. 인사를 나누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산에서 온 두 친구는 농촌에서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고 했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처음 만나 조금 어색한 공기 속에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열아홉 살 겨울에 농촌으로 이사했어요. 그리고 스무 살 봄에 첫 씨앗을 뿌려보았죠. 청소년 때 친구들이랑 여행하면서 여행 경비를 벌려고 농사일을 했어요. 모판을 만들고, 풀을 매고, 무랑 배추를 심기도 했어요. 흙을 만지며 일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이 일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요. 그때 마침 식구들과 농촌으로 삶터를 옮겼어요. 도시에 살 때도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거든요.”

내 이야기를 듣고, 한 친구가 질문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농촌에 살 거예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도 여전히 자연에 살면서 흙을 만지고 밭을 가꾸는 일이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 거야 하고 딱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꾸 들여다보아야지요.”

“농촌에는 할 게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여기서는 뭐하고 놀아요?”라는 질문에는 구륜이가 먼저 대답을 했다. “어릴 때부터 산골 마을에 살아서 그런지 심심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요. 제가 익숙해져서 그렇지 사실 할 게 없는 건 맞아요. 친구도 거의 없고요. 그래도 가까운 마을에 예슬이 누나도 있고, 수연이 형도 있어서 괜찮아요. 만나서 보드게임도 하고, 형한테 기타도 배우고 하니까요. 아, 수연이 형은 예슬이 누나 동생인데 일요일마다 기타반을 열어요. 다른 마을에 사는 친구 네 명이 기타를 배우러 와요.”

구륜이 말이 끝나고 나도 덧붙였다. “이웃들을 초대해서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해요. 지난해에 배추밭 콘서트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깜짝 놀랐어요. 심심하니까 무언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기도 해요. 또 우리 마을에는 청년들이 무언가 하려고 할 때 힘을 보태 주려는 어른들도 계시고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친구가 “저 여기에 살러 와도 돼요? 제가 오면 살 집이랑 농사지을 밭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럼요. 우리는 친구 한 명이 더 생기면 환영이지요. 농사지을 밭도 있고, 우리 마을에서 살고 싶어 하는 청년을 만나면 소개해 주려고 빌려둔 작은 집도 있어요. 아직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아서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지만요. 지금은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집으로 열어 두었어요. 꼭 사는 게 아니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 놀러 와요.” 그 말을 들은 친구 얼굴이 하얀 구름처럼 환해졌다.

그냥 하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을 환대하고 싶었다. 내가 농촌에 살면서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 ‘조건 없는 환대’였기 때문이다. 삶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까다로운 조건 없이 그냥 한 번 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따금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나처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농촌에서 잘 사는 언니, 누나가 되어 주고 싶다. 그렇게 내 모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내 삶이 동생들이 농촌으로 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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