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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사는법]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무사히

[한국농어민신문]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셋째 주 토요일마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열고 있다. 담쟁이 인문학교는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모이는 산골 마을 작은 배움터다. 지난해 12월, 운영위원들이 모여 2020년 인문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운영위원은 모두 이웃 마을에서 더불어 농사짓는 농부님들이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은 주제를 정해 강사를 초대하고, 우리 안에서 토론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주제를 정해 강의를 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럼 기후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난해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관한 강의를 했다. 지난해 강의와 이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5월 인문학교 주제는 ‘기후위기’로 정해졌다.

지난 여섯 해 동안 빠지는 달 없이 꾸준하게 배움터를 열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서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강의를 부탁해 놓았던 강사님들에게도 인문학교를 열지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 드렸다. ‘5월에는 인문학교를 열 수 있을까?’ 알 수 없었지만, 조금씩 강의 준비를 했다.

인문학교가 열리지 않아도 운영위원들은 달마다 회의를 했다. 5월을 준비하는 회의에서 “이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바뀌었으니 인문학교를 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의견이 나왔다. 운영위원 회의는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전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하루에 확진자가 열 명도 나오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인문학교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기후위기’는 꼭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주제였다. 코로나19 역시 기후위기와 가깝게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셋째 주 토요일 저녁 7시에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렸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얼굴들이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열을 재고, 참가자 명단을 썼다. 마스크를 끼고, 조금씩 거리를 두고 앉았다. 자연스럽지 못한 풍경에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후위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그런 것을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든 이야기해야만 했다. 누군가 조금 먼저 시작하는 것일 뿐,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봄은 농부들이 아주 바쁜 철이다. 나도 밭을 일구고, 여러 작물을 심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시간을 쪼개어 강의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까? 내가 꼭 전하고 싶은 것이 뭘까? 감자를 솎으면서도, 고구마를 심으면서도, 생강밭에 부엽토를 깔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마다 책상에 앉아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기후위기와 관련된 영상을 보았다.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남아 있는 탄소 예산은 8년 만에 사라질 것이다.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도가 올라갔고, 1.5도를 넘어서면 우리 힘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단 0.5도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세계 4대 기후 악당 국가’로 뽑힌 기후위기 가해자국이다. 이런 상황에도 석탄 발전소 건설과 제주 제2공항 건설 들을 허가했다. 이런 사실들은 기후위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이야기다. 현재 지구의 상황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지난해 한창 고구마를 캐야 할 때 비가 자꾸 내려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맑았다가 흐렸다가 뒤죽박죽인 하늘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농부로 살 수 없는 날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땅을 일구며 살아가고 싶다. 내 삶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과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비닐 대신 짚과 산에서 긁어 온 부엽토를 밭에 덮었다. 비닐을 쓰면 하루 만에 끝날 일을 몇 날 며칠 동안 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이 몇 날 며칠이 더는 우리에게 없는 날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의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을 소개했다. 대나무 칫솔을 쓰고,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스텐 빨대를 쓰는 일들 말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도, 기후위기도,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제는 조금 더 큰 힘을 가진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 할 때다. 이번 강의를 마치면서는 정부와 기업이 기후 침묵을 깨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함께 소리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을 때까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가 가진 힘 일 테니까.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무사히 농사지을 수 있을까? 그때도 여는 해와 같이 몇 날 며칠 산에 올라 부엽토를 긁을 수 있기를, 이웃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어 먹을 수 있기를, 봄마다 자라는 새싹에 내 마음이 콩닥콩닥 뛰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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