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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밥상

[한국농어민신문]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나는 농부가 되고서야 내가 먹는 음식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알게 되었다. 땀 흘려 일을 해 보니 작은 열매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고구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농사 이야기를 시작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자꾸 생겼다. 내가 농사지은 농산물로 요리를 하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구나 싶었다.


‘플랫폼 510’에서 열리는 청년 농부 밥상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플랫폼 510’은 지역과 지역, 청년과 청년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밥상 모임은 청년 농부들이 기른 농산물로 함께 밥을 해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나와 함께 밥상 모임에 초대된 청년 농부가 두 사람 더 있었다. 밀양에서 ‘만나팜 스토리’를 일구고 있는 서효정 님과 서울에서 도시 농부로 살고 있는 장수정 님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합천에서는 청년 농부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밥상 모임이 궁금하고 더 기다려졌다.

따뜻한 한 끼가 먹고 싶은 사람, 청년 농부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함께 요리하고 싶은 사람. 다양한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서울 안국에 있는 ‘플랫폼 510’에 모였다.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니 스무 명이 조금 넘었다. 모임이 시작되고 사회자는 나를 ‘글 쓰는 낭만 농부’로 소개했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낭만’이라는 말이 나를 따라 다닌다. 그래서 참 좋다. 언제 들어도 낭만과 농부는 잘 어울리는 짝이니까 말이다.

농부에게 낭만은 아주 중요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것을 지키고 나눌 때 낭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농부로 살면서 누리는 낭만을 나누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함께 요리한 밥을 나누어 먹는 시간도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쉬고 싶은 일요일에 청년 농부가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 그 자리를 찾아온 모두에게도 낭만이 있었다.

밥상 모임에 고구마를 들고 갔다. 내가 함께 만들 요리는 ‘채를 썰어서 굽는 고구마 전’과 ‘튀기지 않는 고구마 맛탕’이었다. 집에서는 특별히 정해진 방법 없이 요리를 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는데, 한 번도 몇 그람, 몇 숟갈을 재어 본 일이 없다.

“간장 얼마나 넣어요?”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늘 “적당히”라며 대답하셨다. 넣는 양념도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 보니 함께 요리하기 위해서 레시피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결국 서울에 가기 며칠 전에 처음으로 재료 양을 재어 가면서 요리를 해 보았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어서 오신 분들에게 쉽고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할 때 더 힘이 나고, 잘 되는 일도 있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혼자 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나에게 요리가 그런 것이다. 밥을 나누어 먹는 건 좋지만, 요리를 할 때는 혼자 슬렁슬렁 하는 게 좋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요리하는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많은 양을 하는데도 여럿이 손을 모으니 요리가 뚝딱 되었다.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고구마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농부가 되고서야 내가 먹는 음식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알게 되었다. 땀 흘려 일을 해 보니 작은 열매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고구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농사 이야기를 시작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자꾸 생겼다. 내가 농사지은 농산물로 요리를 하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구나 싶었다.

혼자 서울에 살면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날이 얼마나 될까? 씨를 뿌리고 작물을 기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도시 사람들에게 이제는 밥을 지어 먹는 과정까지도 사라지고 있다. 다 차려진 밥상을 보고, 먹기만 하는 사람들한테는 농산물과 농부는 어떤 의미일까? 고구마 한 알과 밥 한 그릇이 생명으로 다가올까? 농부와 자연이 살려면 밥상을 생명으로 보고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밥을 지어 먹는 과정을 살리는 일은 도시 사람뿐만 아니라 농부에게도 중요하다.

내가 농부로 살면서 글을 쓰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씨를 뿌리고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흙을 만지는 사람이 내는 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밭에서 땀 흘리며 사는 이야기를 글을 통해 나눈다. 내 글에는 생명을 가꾸는 농부와 우리를 품어 주는 자연에게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다른 모둠에서는 삼채 닭백숙과 깍두기, 배추전과 배추된장국을 만들었다. 우리 모둠은 고구마 요리만 했는데 먹을 때에는 밥상이 풍성했다. 차려진 음식을 보니 닭백숙을 끓이고 배추전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것을 볼 때 ‘저기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과정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고맙다.

몇 시간 되는 않는 짧은 시간에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 밥 한 끼를 나누어 먹었다. 다시 서울 어딘가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내가 농부로 살아가는 소박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기뻤다. 마트에서 고구마를 보면 함께 요리해 먹었던 추억을, 내가 들려준 고구마밭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리지 않을까? 그것이면 충분하다. 가을걷이로 바쁜 가운데 세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온 서울이지만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편안하게 밥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따뜻함은 이야기가 있는 밥상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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