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지난가을부터 짓기 시작한 작은 집이 다 지어졌다. 농촌에 살아가는 한 청년이 안전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준 사람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다림 끝에 준공 허가가 났고, 며칠 전 등기를 마쳤다. 이제 면사무소에 가서 주소지를 옮기면 행정에서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마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곧 비워 주어야 해서 부지런히 이사하고 있다. 짐차에 날마다 조금씩 이삿짐을 실어 나른다. 조금 더디긴 하지만 하나하나 공간을 채워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도 아직 새집이 낯설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려면 그만큼 시간과 이야기가 쌓여야 하지 싶다. ‘여기가 이제 내 집이구나.’ 생각하며 방바닥에 누워 보았다. 낯선 길을 떠나게 되더라도 여기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문득 친구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이유일까? 그 마음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 혼자 안전한 울타리를 가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자기 형편에 맞는 월세 집을 구하지 못해 걱정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안전한 집을 가지는 일이 특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받은 이 마음을 나 혼자 누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다.

이사를 하느라 입춘이 지난 지도 몰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이제 슬슬 씨앗 넣을 준비를 해야겠다. 2월 셋째 주 즈음이면 고추,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 씨앗에 싹을 틔워 모종을 키우기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해마다 밭 지도를 그린다. 어디다 무얼 심을지 미리 구역을 나누어 그리는 일이다. 어떤 작물을 함께 섞어 심으면 좋은지, 무엇과 무엇은 떨어뜨려야 하는지. 겨울마다 그리는 밭 지도인데도 늘 새롭다. 공부하며 기록해 둔 것을 들여다보며 찬찬히 밭 지도를 그리고 있다. 내가 밭 지도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우리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작물인지, 작물과 작물이 조화롭게 어울려 자랄 수 있는지, 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얼 더하고, 무얼 빼야 하는 지다. 그런데 집을 짓고, 빚을 지다 보니 올해는 경제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은 농사로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는 소농이고, 아주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 심는다. 기계를 전혀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되도록 적게 쓰려고 애쓴다. 그렇다 보니 규모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렇게 하는 일은 내 몸도, 자연도 지속가능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생물종 다양성을 지키고, 땅을 살리는 데 보탬이 되는 농사를 지으려 애써왔지만, 솔직히 돈이 되는 농사는 아니었다.

농사로 적게 벌어도 적게 쓰면 되었다. 강연과 공연 등 다른 일로 버는 수입도 있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크게 모자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빚을 지고, 집을 짓고,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액을 보니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내가 한 해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보내고, 많은 힘을 들이는 공간은 밭이다. 이곳에서 내가 지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수입을 가질 수는 없을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 오랜 고민을 현실에서 이루어갈 방법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튼 기적처럼, 나에게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는 집이 생겼다. 그 사실이 내가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든든함이 되어주지 않을까? 이 집과 농장이 앞으로 나에게 ‘지속가능’이라는 희망을 상상하고 이루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도, 내 몸도, 지속가능한 농사를 짓고 싶다. 내가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알맞은 벌이도 있어야겠다. 내가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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