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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한 걸음씩 다음 걸음을 걸을 수 있다면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농촌에서 자신이 바라는 삶을 고민하며 다음 걸음을 걸어 나가고 싶지만, 안정된 집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겨우겨우 집을 찾는다고 해도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음 걸음은커녕 청년들은 첫걸음 떼고, 떼고, 또 떼고 있다. 

10월은 농부들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달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밭에 나가려고 옷을 든든하게 챙겨 입는다. 이제는 아침 공기가 꽤 차갑다. 아침이면 배추밭에서 배추벌레를 잡고, 낮에는 고구마를 캔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 내며 열심히 낫질하다 보면 껴입고 나온 옷이 무겁게 느껴진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 웃옷을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는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쉰다. 부지런히 고구마를 캐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음 할 일을 생각한다. ‘내일까지 고구마를 다 캐고, 모레는 들깨를 베고, 마늘을 심어야지’하고 말이다. 그렇게 요즘은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내내 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 바쁘다 바빠!’ 하다가도 호미질을 하며 고구마를 캐다 보면 마음이 단순해진다. 그러고 보면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하루는 복잡할 것이 하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밭에 나가 일하고, 물 마시며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점심밥 먹고 일하다 지나는 고양이에게 눈길 한 번 준다. 그렇게 이내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된다. 어쩌면 내가 소농이기 때문에 누리는 단순함일지도 모르겠다. 흙을 만지며 일하다 보면 코로나 19와 기후위기로 외롭고, 위태로웠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호미질 하다가 만난 지렁이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리 아직 살아있구나’하고 말이다.

다른 밭일을 하느라 한동안 마당에 있는 텃밭을 잘 살피지 못했다. 어디가 두둑인지 이랑인지도 모르게 풀이 한가득 자랐다. 낫으로 풀을 베다 보니 곳곳에서 뒤늦게 달린 오이와 가지, 넝쿨에 걸려 있는 호박들이 보였다. 꼭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숨겨진 작물을 찾아 가며 풀을 치다가 토마토 울타리 사이에 쳐진 거미집을 보았다. 푸른빛 몸통을 가진 거미가 살고 있었다. 얼키설키 거미줄이 쳐진 걸 보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산 지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여기가 너희 집이구나’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새삼 스스로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거미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만난 친구 생각이 났다.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에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고 왔다. 그 친구도 나처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친구가 그곳으로 이사하고 처음 가보았다. 마당 앞에 작은 텃밭이 있었고, 툇마루에 앉으면 들과 저수지가 보였다. 툇마루에 놓인 소파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래된 집이라 손보아야 할 곳이 많았지만, 살기 어려울 만큼 험한 집은 아니었다. 친구는 시골에서 이 정도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다시 이사할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집주인이 집을 팔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빈집을 관리해 주는 조건으로 월세 없이 지내고 있던 집이라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언제 팔릴지 모르는 집, 친구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집이었다.

이럴 때, 거미처럼 내가 살 집을 스스로 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는 집을 구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이 지역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미 살 집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 경험이 여러 번이었다. 농촌에 빈집은 점점 늘어가지만,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세를 놓는 곳은 거의 없다.

농촌에 청년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청년이 농촌에 살려고 하면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마다 청년들의 정착을 위해 지원 정책을 펼친다. 공유공간을 지어서 몇 개월씩, 또는 일 년씩 농촌살이를 경험할 청년들을 모집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일 년 뒤에 공유공간을 떠나야 할 때가 되면 청년은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만다.

적당한 비용으로 원하는 시간만큼,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쾌적한 집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공간인데 말이다. 청년이 농촌에서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은 집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그 삶을 어떻게 일구어 갈 수 있을지도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낯선 마을에서 내가 바라는 삶을 찾는다는 것은 또 한 번 막막한 벽을 넘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을 찾는 것이기에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더디다고 해도, 한 걸음씩 다음 걸음을 걸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갈 수 있다.

농촌에서 자신이 바라는 삶을 고민하며 다음 걸음을 걸어 나가고 싶지만, 안정된 집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겨우겨우 집을 찾는다고 해도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음 걸음은커녕 청년들은 첫걸음 떼고, 떼고, 또 떼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언저리를 맴돌아야 할까?

이제 양파와 마늘을 심고, 배추와 무를 수확해 김장까지 해놓고 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친구는 올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집을 구했을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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