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고구마를 캐고, 콩을 베고, 생강을 뽑고, 양파와 마늘을 심었다. 그렇게 하나씩 가을걷이를 갈무리하고 있다. 11월 첫째 주부터 생강차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다른 일을 마쳐두어야 한다. 해마다 2주 정도 이웃 농부님들과 함께 농사지은 생강으로 생강차 만드는 일을 한다. 요즘은 날마다 생강차 작업장에 출퇴근하고 있다. 생강차 일을 마치면 곶감을 깎고, 무차와 고구마말랭이를 만들고, 김장을 한다. 그렇게 김장까지 마치고 나면 쉬어 가는 겨울이 시작된다. 아직은 일이 한참 남았다.

나에게 가을은 한 해 가운데 가장 바쁜 철이다. 더구나 올해 가을은 유난히 더 그렇다. 강연 초대로 다른 지역에 다닐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진다> 시집이 나왔다. 일곱 해 동안 농사지으며 쓴 시들을 엮었다. 올해 7월에 나온 <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홈스쿨링을 하며 여행했던 이야기다. 책이 출판되고, 이따금 강연 초대를 받았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되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의 영향인지 올가을에는 강연 일정이 가득 잡혔다.

강연에서는 지금 내가 농사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강연 준비를 꼼꼼히 한다. 말하는 일에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었다. 말하기보다 듣는 걸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하고 후회를 한다는데, 나는 ‘그때 이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는 날이 많다. 사람들 앞에 설 일이 많아지면서 어릴 때보다는 말솜씨가 좋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말하기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느라 저녁마다 틈을 내어 강연 원고를 썼다. 그렇게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말을 할 때 도움이 된다. 원고를 읽고, 또 읽어본다. 열심히 준비하고도 사람들 앞에 서면 마구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 떨림이 목소리나 표정에 삐져나올까 바짝 신경을 쓴다. 그렇게 강연을 마치고 나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모른다. ‘가을걷이로 바쁜 가운데, 떨리는 마음 다독여가며 나는 왜 사람들 앞에 설까?’ 그 생각 끝에 알았다.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나는 농사지으면서 글을 쓴다. 동생이 지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공연도 다닌다. 팀 이름은 ‘서와콩’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디자인 일도 하게 되었고,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해 나무 숟가락을 깎고, 빵도 굽는다. 연결고리가 크게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촌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농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일을 연결하고, 내가 가진 빛깔로 풀어내는 것이 재미있다. 농부라고 꼭 농사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농부라서 쓸 수 있는, 그릴 수 있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있다. 나는 내 삶에 담기는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많이 찾아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뉜다. ‘대단하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별나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는 홈스쿨링을 할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을 때가 많다.

‘보통’이라는 기준과 다르면 쉽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실 살아 있는 생명 가운데 같은 것이 없다. 고구마를 캘 때 보아도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 당연함을 함께 되찾아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조금 더 익숙해질까? 알 수 없지만, 내 힘이 닿는 만큼 용기를 내어보려고 한다. 강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늘 아쉬움이 남고는 하지만, 농부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을 얻을 때가 많다. 그렇게 사람들과 서로 다른 삶에 귀 기울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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