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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세련된 바보’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지구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은 지구를 함부로 써 온 사람들 때문이다. ‘앞으로 사오십 년 뒤에도 나는 농부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두려움이 몰려온다. 우리는 점점 편리한 것만 찾는 ‘세련된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보다 더 숨 쉬기 불편한 지구가 되기 전에, 지구를 살리는 불편함을 누려야겠다.


“인자 날씨가 풀리야 될 낀데 이래 추워가 뭐를 할 수가 없다. 또 비는 와 이래 안 오는지. 이래가 양파가 살란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긴긴 겨울을 보낸 농부들도 슬슬 몸을 풀고 한해 농사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번 해에는 봄이 감감 무소식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추운 날씨와 가뭄 때문에 걱정이 많다. 어디 우리 마을 어른들만 걱정일까, 자연에 기대어 농사짓는 모든 농부가 애태우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올 봄으로 다섯 번째 농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도무지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지구가 점점 다혈질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여름에는 욱 하고 열을 내더니, 겨울에는 견디기 힘든 매서운 추위가 이어진다. 지난 봄에는 논에 심은 모가 말라 죽어서 모를 다시 심는 일이 생겼고, 그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며칠을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지구가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는지 계속되는 지진으로 포항, 경주, 울산과 같은 도시는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부글부글 끓는 속을 털어내는지 화산재까지 뿜어댄다.

지구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은 당연히 지구를 함부로 써온 사람들 때문이다. 지구가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그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농사를 지은 지난 사 년 동안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 사오십 년 뒤에도 나는 농부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두려움이 몰려온다. 다음 세대가 아닌 당장 나까지만 생각해 보아도 지구는 이미 한계치에 와 있다.

얼마 전, 한 모임에 갔다가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는 친구를 만났다. 며칠을 함께 지내며 보니 컵뿐만 아니라 흔하게 뽑아 쓰는 일회용 비닐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먹다 남은 반찬은 뚜껑이 있는 통에 담았고, 화장실에 갈 때에도 휴지 서너 칸이면 충분하다 했다. ‘그게 별 일이야?’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일상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얼마나 마음을 들여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친구는 조금 귀찮고 불편한 것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할 것이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생명을 살리는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서, 일상 속에서는 나 역시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부끄러웠다. 병든 지구를 걱정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편리한 것이 좋은 것이 되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점점 편리한 것만 찾는 ‘세련된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를 만난 뒤부터 나는 덜 바보스럽게 살기로 했다. 남은 반찬은 랩에 싸기보다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행주가 빨기 귀찮아서 휴지에 물을 묻혀서 상을 닦곤 했지만, 이제 행주 빠는 일 정도는 기꺼이 한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둘둘 풀었다가도 다시 감아서 몇 칸만 떼어 쓴다. 도시에 가면 불편한 일이 더 많아진다. 이제는 손을 씻고 일회용 휴지를 뽑아 쓰는 것도,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때 종이컵을 쓰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지금은 텀블러와 손수건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는 “머그컵에 주세요”라고 말한다. 한 번씩 말하는 걸 깜빡해서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가 나오면 속이 상한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테이크아웃 잔을 준다. 설거지가 귀찮아서일까? 여러 사람이 마시는 컵보다 일회용이 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도시에 나가면 휴지통 둘레로 테이크아웃 잔들이 함부로 버려져 있다. 이것만 줄여도 지구가 조금은 살 만할 텐데 싶다.

자신이 누리는 편리함이 지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있지만 지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머그잔에 주세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어른들에게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머그잔에 주세요”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가 조금 더 많은 날들을 지구에서 살아가야 할 테니 말이다. 지금보다 더 숨 쉬기 불편한 지구가 되기 전에, 지구를 살리는 불편함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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