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기초 기반이 부족한 청년 농민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붙잡아야 하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정말 농촌에서 삶을 지켜가고자 하는 청년 농민들에게 힘이 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보통 하지가 지나면 장마가 시작 된다. 장마가 오기 전에 양파, 마늘, 감자를 수확하고 콩, 수수, 들깨를 심어야 하다 보니 날씨를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게 된다. 거두고 심기를 한꺼번에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고, 많이 바쁘지요?”라는 말이 인사가 된다. 할머니들은 “내가 농사를 그만 두던가 해야지 이제는 힘도 못 쓰것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신다. 하지만 평생을 해온 일을 쉬이 그만 두기 어려우신가 보다. 해마다 이 맘 즈음이 되면 또 논밭을 오가고 계시니 말이다. “쉬엄쉬엄 해야지 무리하지 마셔요. 그렇게 일하면 골병들어요”라고 말하지만 심은 것은 거두어야 하고, 또 심어야 하는 것은 제때에 심어야 하니 무리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지나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때에 따로 시간을 내어 교육을 받아야 하는 농민들이 있다. 바로 ‘청년 창업농 영농정착 지원금’을 받는 청년들이다. 창업농 지원금은 청년 농민들이 농촌에서 자립해갈 수 있도록 길게는 삼 년 동안 농장 경영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창업농 지원금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절차와 여러 조건이 뒤따른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마다 받아야 하는 160시간 교육이다. 문득 농민을 위한 교육이라면 쉴 틈 없이 바쁜 농사철에는 교육을 피해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곧 한더위가 시작되면 낮에는 논밭에 나가 일하기가 어렵다. 그런 시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농민들이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지인에게 창업농 지원금을 받으며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쁜 농사철에 교육을 들어야 하는 것이 그분에게도 꽤나 큰 부담인 모양이었다. 힘들게 시간을 내어서 갔는데 실제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이 아닐 때가 많아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그리고 창업농 교육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교육을 받으러 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나가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담당자의 추측일 뿐 함께 교육을 듣는 다른 분들에게 어떤 불만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지 않고 데리고 왔냐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청년 농민을 위한 교육이라면 아이가 함께 올 수 있다는 생각은 당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농민회에서 어떤 교육이나 행사를 열 때에는 보통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과 아이들을 살피는 돌봄이 한 두 분이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서 시행하는 제도이고, 교육이라면 아이와 함께 온 농민을 내쫓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청년 창업농 영농정착 지원금은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인다. 지원금 사용 제한이 심해지면서 “도대체 어디 쓰라는 말이냐”라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기초 기반이 부족한 청년 농민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붙잡아야 하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정말 청년 농민들에게 힘이 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농민들을 도와주는 기초 수급이 아니라, 비어가는 농촌을 채우고 지켜가는 농민들에게 주는 기본 소득 성격이 더 강해질 때 이 제도가 가진 원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삼 년 동안 지원금을 주어 청년 농민을 늘이는 것만으로 농촌의 미래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이다. 농민 숫자만큼 농사법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자연에는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으니 농사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여섯 해째 농사를 짓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늘어만 가는 것이 농사다. 하지만 내 경험만큼 조금 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농장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고, 농산물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것도 현실에서 중요하다. 농촌에 살든, 도시에 살든 경제 자립이 되어야 삶을 꾸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에게 그보다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자연을 대하는 마음, 땅에 담아갈 가치’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들이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간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작은 미생물 하나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연에 기대어 사는 농민은 무엇이 귀한 줄 알고,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안다. 그래서 농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렁이, 개미, 꽃, 나무, 늙은이, 젊은이, 여자, 남자, 어른, 아이. 그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며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농업은 ‘뿌리’라고 했다. 뿌리를 지키는 농민과 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생명이 생명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농촌에서 소외 받아온 이들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농촌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업농 교육장에서 아이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이 제도가 정말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소외되어 왔던 이들을 똑같이 소외시킨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완벽한 제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지금 농촌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농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고민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창업농 교육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농촌으로 가야 하는지, 청년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농촌에서 어떤 삶을 일구어가고 싶은지.’ 하는 질문들 말이다. 지금 청년 창업농 지원금을 받는 농민들은 농촌을 함께 일구어 가게 될 동지들이다. 그들이 조금 더 건강한 농촌을 고민하고,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가치를 배우고, 세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자연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다. 저마다 빛깔과 무늬는 다르지만 농촌에서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고, 꾸준히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농촌이 그런 희망이 있는 삶터가 된다면 농촌을 찾아오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늘어갈 것이라 믿는다. 정착 지원금이 농촌에서 삶을 지키는 농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청년 농민들이 내는 소리에 더 귀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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