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이웃 농부님들과 힘을 모아 2014년부터 달마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열고 있다. 4월 담쟁이 인문학교에서는 ‘노들 장애인 야학’ 천성호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장애인 이동권, 노동권, 자립권, 탈시설’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노들 장애인 야학은 1993년에 문을 열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내어주고 있다. 또 장애인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 기본권에 대한 투쟁을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이번 강연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과 이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기본권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장애인의 삶이 너무나 낯설게 들렸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따금 뉴스에서 장애인 학교 설립에 대한 갈등을 다룬 기사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잊었다.
나는 다양한 삶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다양한 씨앗을 뿌리며, 제 모양과 빛깔을 잃지 않고 자라는 작물들을 가꾸며,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해 왔다. ‘내가 꿈꾸는 세상 안에 장애인이 있을까?’ 나에게 물어보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름의 소수가 존재한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꿈꾸었으니, 그 가운데 장애인도 분명 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 흐릿한 모습이었다. 

나에게 장애인과 함께했던 기억은 많지 않다. 장애인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휠체어를 끌었던 기억, 초등학교 때 특수학급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는 기억 정도다. 먼 기억 속에 있던 존재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인터넷 첫 화면에 보였다. 쉽게 잊지 않으려면 자주 보아야 한다. 그들을 자주 볼 수 있게, 그들이 무얼 바라는지 들을 수 있게. 그들의 걸음으로 지하철 출근길로 나와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또 이십 년 동안이나 외쳐온 이야기에 지금껏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을 미안하게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강연을 마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생각해 보면 농촌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집 밖으로 못 나오는 날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하루에 몇 대 안 다니는 버스 계단을 힘겹게 올라야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갈 수 있어요. 병원에서는 큰소리로 고래고래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요. 잘 들리지 않아서 소통이 어려운 어르신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저상버스나 대중교통 지원은 서울이나 큰 도시 중심이니까 농촌에서는 꿈도 못 꿔요. 활동 지원도 마찬가지고요.” 그 말에 많은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걸음이 더뎌지고, 손이 무뎌지고, 귀가 어두워지는 건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일상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 이상과 정상, 문명과 비문명을 구분 지어 나눈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어떤 기준에 맞추어 선을 긋고, 소수와 다수로 나누며 사는 세상이라니…. 어딘가 잘못됐다. 어쩌면 나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내가 겪지 않은 일을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무얼 겪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저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리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그 자리에 때로는 소수, 때로는 다수라는 이름표가 붙여진다. 선을 그어 대는 세상 가운데 소수라는 자리에 선 누군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겠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삶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이루어 가는 데 보탬이 되는 존재이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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