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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노래하는 청년 농부 ‘서와콩’

[한국농어민신문]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악기를 잘 다루든 못 다루든, 노래를 잘 하든 못 하든. 추억을 쌓고,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삶에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노래 만들기를 좋아하는 친구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만나 자기 삶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4월 13일 토요일 아침, 온 식구가 분주하게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전남 순천 ‘사그락 어른이 예술학교’에서 여는 공연에 초대 받았기 때문이다. 사그락(思그絡)은 ‘마음을 그와 잇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며 삶을 아름답게 일구어 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문득 ‘아름다움’은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는 생명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기타와 젬베(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를 차에 싣고 순천으로 출발했다. 남동생 수연이와 나는 이따금씩 공연 초대를 받는다. 공연이 대부분 봄가을에 있다 보니 꽃놀이, 단풍놀이 하며 다녀 올 수 있다.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지내다가 한 번씩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행하듯 다녀오는 공연이 좋다. 공연을 자꾸 다니게 되면서 ‘서와콩’이라는 팀 이름도 정했다. ‘서와’는 ‘글과 함께’라는 뜻으로 내가 쓰는 별명이다. 그리고 수연이 어릴 적 별명인 ‘콩’을 붙여 이름을 지었다.

수연이는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 짓기를 좋아한다. 한두 곡씩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 시간 공연도 거뜬히 채울 만큼 노래가 많아졌다. 마을 장터에서 ‘노래하는 청년 농부 남매’로 소개 받으며 노래를 몇 곡 부르던 것이 시작이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이제는 다른 지역에까지 공연을 다니게 되었다. 대단한 공연 매너나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로 쓴 가사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힘이 있는가 보다.

순천에서 열린 공연 제목은 ‘달그락 우리들 음악무대’이다.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만든 자리이다. 공연 날짜를 ‘4월 13일’로 정한 것에도 그런 의미가 있다.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회의가 열렸고, 4월 13일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는 역사가 기록에 남아 있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 있는 ‘한옥 글방’ 마당에 무대가 차려졌다. 한옥 글방은 누구나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단을 높이 세우는 대신 마당에 멍석을 깔아 무대를 만들었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옛날 시골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마당에 멍석을 깔았다고 한다. 멍석을 깔아 만든 무대가 마음에 들었다. 리허설을 하려고 악기를 들고 앉았는데 문화의 거리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마당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보니 지나는 사람 누구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산골 촌놈이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섰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1부는 순천 지역 사람들이 나와 판소리와 색소폰 연주를 하고,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지은 자장가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어서 화순에서 온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이처럼 말랑말랑해졌다. 환한 사람들 표정을 보니 긴장되는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대에 선 사람들이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니까 듣는 사람들도 저절로 행복하게 보였다.

2부로 서와콩 공연이 시작 되었다. 1부에서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신 덕에 편안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노래에는 ‘흙, 풀, 하늘, 할머니’ 같은 말이 많이 나온다. 보통 노래에서 듣기 힘든 말들이다. 농사를 짓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 이야기가 농부가 아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 도시에서 공연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 어디에 살던지 사람은 자연과 깊이 닿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름 없는 산골 청년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이번 공연처럼 자기 자리에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박수 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멋진 공연에 초대 받아 함께 노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특별히 악기를 잘 다루거나 음악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다. 피아노와 기타를 치지만 나 혼자 링가링가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에 만족하는 실력이다. 노래 연습을 할 때에 내가 음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수연이가 똑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 준다. 화음을 한 소절 맞추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린다. 그런 내가 공연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수연이 덕이 크다.

악기를 잘 다루든 못 다루든, 노래를 잘 하든 못 하든. 추억을 쌓고,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삶에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노래 만들기를 좋아하는 친구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만나 자기 삶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산골 마을 생활이 조금 더 재미있고, 조금 덜 외롭다. 외로움을 이겨갈 힘이 생긴다고 하는 말이 더 맞겠다.

기회가 된다면 밭에서도 공연을 해 보고 싶다. 감자 캐는 날 밭에 무대를 차려 놓고 공연을 하면 얼마나 멋질까? ‘문화’와 거리가 먼 시골이지만 또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밭만큼 멋진 무대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노래로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나누며 살고 싶다. 산골이라는 단순한 음률에 통통 튀는 재미난 화음을 섞어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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