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흙 묻은 옷, 땀 닦는 수건, 거친 손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다. 그렇다 보니 손으로 만들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세상에 몸을 쓰는 사람이 사라지고, 머리 쓰는 사람만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달부터 경남 산청에 있는 목공소 ‘나무로’에서 목공을 배우고 있다. 나무로 김도환 선생님은 청년들이 자립을 위한 기술을 익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목공반을 열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남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뭔가를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남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인격이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을 도둑질 당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목공반이 열리는 월요일은 농사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목공소로 간다. 책에 나온 글처럼 나를 지키기 위한 기술을 배우러 가는 셈이다. 우리 마을에서 목공소까지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함께 목공을 배우는 인화 삼촌이 나와 동생 수연이, 그리고 이웃 마을에 사는 구륜이와 도일이, 가을이 언니를 트럭에 태우고 목공소에 간다.

요즘은 양념통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선반을 만들고 있다. 보기에는 만들기 쉬워 보였다. 하지만 목재를 자르는 일부터 나무가 자란 결에 따라 안쪽과 바깥쪽을 정하는 일, 못을 박는 일까지 나무를 다룬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해 보는 일이다 보니 이런저런 실수도 잦았다. 작은 선반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목수를 ‘장인’이라 부르는 까닭이 있구나 싶었다. 살아 있는 나무를 다루는 것은 농사만큼이나 세월을 쌓아 익혀야 하는 일이었다.

지난 목공반에서는 김도환 선생님이 목수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도편수 자리는 없었어요”라는 말이 계속 기억이 난다. 김도환 선생님은 목공소를 열기 전에 한옥 짓는 일과 사찰과 문화재를 고치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한 번은 문화재 복원을 마치고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는데, 정치인들 자리는 가장 앞줄에 준비되어 있었지만 도편수 자리는 없었다고 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책임지고, 감독하고, 땀 흘려 일한 도편수 자리가 아예 없었다니! 그 이야기가 씁쓸하게 가슴에 남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구나’ 싶었다.

내가 처음 농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랬다. 마을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이 돈도 안 되는 농사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라고 말리셨다. 얼른 공부해서 도시로 나가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농촌에서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도시로 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농사짓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를 만날 때마다 도시에 나가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시골 어르신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성공과 행복은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높은 집에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흙 묻은 옷, 땀 닦는 수건, 거친 손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다. 그렇다 보니 손으로 만들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세상에 몸을 쓰는 사람이 사라지고, 머리 쓰는 사람만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세상은 물병에 꽂아둔 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흙과 멀어져 뿌리가 없는 꽃은 얼마 못가 시들고 만다. 모든 생명은 똑같다. 무엇이 뿌리인지, 어디에 있어야 살 수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남이 정한 행복 말고, 내가 정말 무얼 할 때 행복한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농사짓는 일이 행복한 나는 농부로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자연에게 배우면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기준을 바꾸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목에 넥타이를 두른 사람이 높고, 수건을 두른 사람이 낮다는 법은 없다. 기준을 바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런 시선은 힘을 잃을 것이다.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끼고, 호미를 든 내 모습이 좋다. 아직은 서툴지만 내 삶을 세우기 위한 기술을 배워가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어른들도 이제 나에게 도시로 가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올해 너거 집 마늘은 어떳노?”하고 물으신다. 얼마 전에 고구마를 심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재밌나?”라고 물으셨다. “네, 재밌어요. 저는 농사짓는 게 좋아요”라고 대답하니 허허 웃으시며 “재미있으면 됐다”라고 하셨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재미있으면 충분하다고, 즐겁게 살라고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다.
청년들에게 땀 흘리며 살라고, 재미있게 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많아지면 좋겠다. 땀 흘리는 사람이 귀한 줄 아는 세상이라면 분명히 삶의 기준을 바꾸는 청년이 더 많아질 거라 믿는다. 그런 세상이라면 꿈이 사치가 아니라 삶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