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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불편한 플라스틱

[한국농어민신문]

청년농부 김예슬

돌아보면 쓰지 않아도 되는 플라스틱을 쓰고 있거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작은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 사람들과 더불어 나도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부’라는 이름 앞에 조금 덜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다.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친구를 만나러 강원도 원주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꼬박 네 시간을 가야 했지만 친구를 보러 가는 길이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친구와 강릉 경포대에 다녀오기로 했다. 원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더 가야 했지만 겨울바다를 보고 싶었다. 더구나 강릉 바다는 처음이라 마음이 더 설렜다.

강릉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경포대로 갔다. 큰 파도가 치는 바다를 한참 보고 있었다. 겨울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았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모래사장을 걷는데 까만 폭죽 탄피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긴 모래사장에 끝도 없이 촘촘하게 버려져 있었다. 폭죽을 쏠 때 나오는 찌그러진 탄피는 어느 바다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폭죽 탄피가 자꾸 눈에 걸린 건, 담쟁이 인문학교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담쟁이 인문학교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산골 마을 작은 배움터이다. 달마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2월 주제는 ‘내가 버린 페트병은 어디로 갔을까?’였다.

테이크아웃 컵, 비닐봉지, 음료수병, 컵라면, 도시락. 우리는 날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면서 살고 있다. 플라스틱은 다양한 모양과 재질로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봄 농사가 시작 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모종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포트를 썼으니 말이다. 감자 밭을 만들 때에도 비닐 포대에 담긴 거름을 써야 했다.

그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어디로 갔을까? 재활용은 제대로 되고 있는 걸까? 노트북을 열어 여러 자료와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글을 읽고 또 읽어도 끝없이 새로운 읽을거리가 나왔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담쟁이 인문학교에서 내가 플라스틱에 대해 공부한 것을 나누었다. 말주변이 없지만 서툴더라도 불편한 진실을 사람들 앞에 꺼내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싸고, 가볍고, 튼튼하게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기적의 소재’라 불렀다. 1955년, 미국 라이프지에 쓰고 버리는 생활이 시작된 것을 축하하는 사진이 실릴 정도였다. 그렇게 플라스틱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태평양에서 거대 쓰레기 섬이 발견되었다. 한반도 7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 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1조8000억개나 된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까지 플라스틱을 먹거나, 플라스틱에 몸이 끼여 구조된 동물은 700종이나 된다.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하게 아렸다.

5mm보다 작은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것도 있다. 처음부터 작게 만들어졌거나, 바다로 흘러간 큰 플라스틱이 깎이고 쪼개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회용 비닐 한 장이 미세 플라스틱 175만개로 쪼개진다니 상상도 안 되는 양이다. 이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 사슬에 따라 우리 식탁까지 올라오게 된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문제가 ‘내 일’이 되어 발등에 떨어지고 나서야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더 싸고 더 빠르게 새로운 것을 만들고, 손쉽게 쓰고, 당연하게 버리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을 ‘발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생산비가 비싸고, 조금 덜 편리해도 지속가능한지,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지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세상에는 경제와 효율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기준과 가치가 있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쓰며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 삶을 가꾸는 일이다. 물건을 쉽게 쓰고 버리다보면, 사람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게 된다. 끝없이 쓰레기를 만드는 삶이 행복할까? 자연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삶을 일구어 갈 때, 우리는 생명이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는 세상과 가까워질 것이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마치고 고마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 아이는 텀블러를 들고 나가지 못한 날에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았고, 어느 가족은 일회용 포장을 쓰지 않으려고 식당에 가서 배달음식을 받아왔다. 그리고 인문학교에 다녀오고 플라스틱을 대신해 쓸 수 있는 물건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소중하다. 늘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꾸어 왔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쓰지 않아도 되는 플라스틱을 쓰고 있거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작은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 사람들과 더불어 나도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부’라는 이름 앞에 조금 덜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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