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우리 마을에서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린다. 어느새 여덟 해째, 이웃 농부님들과 힘을 모아 하고 있는 일이다. 해마다 12월에는 ‘모랑모락’이라는 콘서트를 연다. 공연의 작은 제목은 ‘모랑모락 피어난 평화가 당신에게 닿기를’이다. 이따금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을 초대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담쟁이 인문학교에 나오는 사람들과 무대를 꾸민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운영하는 농부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기타반에서 기타를 배우는 친구들이 연주를 하기도 한다. 올해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대를 꾸렸다.

꽤 긴 시간 동안 공연을 준비했다. 이번 콘서트 주제는 ‘리메이크’였다. 지금까지는 자작곡을 부르는 공연이 많았다. 모두 좋아해 주셨지만, 그래도 낯선 곡이다 보니 잘 아는 노래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두가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는 익숙한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동생 수연이는 원래 있던 노래를 그냥 따라 부르는 것은 무언가 아쉽다며 편곡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그리움만 쌓이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벚꽃엔딩,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모두가 애쓴 덕분에 멋진 노래로 공연이 준비되었다. 특히 편곡이 멋지게 된 곡들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시간을 내어 노래 연습을 하러 왔다. 노래 연습을 한다고 모였지만, 친구들과 시시콜콜 떠들며 웃고, 놀고,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바쁜 일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렇게 친구들과 한바탕 웃고 나니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는 해마다 칠팔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랑모락 콘서트를 보러 오셨다. 가까운 이웃 마을에서 오시는 분, 자가용을 사십 분쯤 운전해 읍내에서 오시는 분, 진주와 창원 등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분도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따뜻한 차와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두 해째 코로나19가 이어지다 보니, 그 풍경이 아주 머나먼 옛날이야기 같다.

올해는 위드 코로나가 되었으니 공연을 자유롭게 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연말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우리가 공연을 여는 날, 방역지침이 새로 내려왔다. 오래 고민한 끝에 결국 공연을 홍보해 열지는 못했다. 공연을 준비한 친구들과 가족들, 담쟁이 인문학교 운영위원만 모였다. 함께 그 시간을 나누지 못해서 아쉽지만, 올해가 거의 다 저물어 가는 어느 겨울날, 소담하게 모여 잘 놀았다.

함께 공연을 꾸민 친구들은 모두 다섯 팀이었다. 서울에서 노래 부르며 활동하는 친구가 흔쾌히 달려와 주었고, 모랑모락 무대에서 몇 차례 공연해 본 친구도 있었다. 또 공연을 기회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고, 무대에 처음 서 보는 친구도 있었다. 무대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그만큼 공연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처음 무대에 서 보는 친구 순서에는 관객석에 앉은 우리에게까지 떨림이 전해졌다. 하지만 무대를 얼마큼 잘하고, 못하고가 크게 중요한 공연은 아니다. 그 무대를 준비해 온 지난 시간을 알고 있는 우리는, 친구의 노래가 어떠하든지 커다란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첫 무대인 만큼 있는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조금 서툴렀지만 진심으로 멋있었다. 용기 내어준 마음이 고마웠다.

담쟁이 인문학교에 나오는 친구들은 거의 다 이웃 마을에 산다. 하지만 이웃 마을이라 해도 차로 이삼십 분씩 가야 하는 거리다. 마을버스가 이따금 한 대씩 다니는 곳이다 보니 생각처럼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공연 준비를 할 때면 친구들이 마음 내어 우리 집으로 찾아온다. 함께 마음을 모아 꾸리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공연하는 시간도 좋지만, 해마다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이 주는 힘도 크다. 새해에는 조금 더 자주 그런 일들을 벌여 보고 싶다. 우리가 모일 이유가 되어주는 그런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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