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올해도 달마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린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손꼽아 보니 학교를 연지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리는 공유공간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작은 산골 마을에 있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 길로 가는 게 맞을까?’ 의심이 들 즈음에 공유공간이 나타난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마음을 내어 주고 있는 것인지 안다. 달마다 자리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힘을 얻는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리기까지 그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십 년 전, 마을 학교를 열어 보자 마음을 모았던 농부님들과 지금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서로 마음을 돌볼 줄 아는 분들이라 그런지 오랜 시간 동안에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구어올 수 있었다.

처음 담쟁이 인문학교를 제안했던 분은 서정홍 시인님이었다. 마을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셨다. 농촌에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때 나는 합천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런 고민을 하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또 이 마을에서 내가 바라는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겠구나 싶어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담쟁이’라는 이름도 서정홍 시인님이 지은 이름이다. 손에 손잡고 담을 넘어서는 담쟁이처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어 보자는 의미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시작할 때에는 마을에 청소년이 많았다. 강연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숲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연말에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저마다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둘 합천을 떠나면서 인문학교에는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따금 인문학교가 열리는 날 공유공간에 찾아와 안부를 전해 준다. 이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있어 흐뭇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 계획을 세웠다. 해마다 겨울이면 올 한 해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지, 어떤 강사를 모실지 회의를 한다. 한 해 계획을 세우는 자리다 보니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회의를 하다 보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내가 인문학교 시간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사람책’이다. 지난해에는 마을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수줍게 자리에 앉으셨지만, 어느새 맛깔 나는 입담으로 삶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스무 살에 시집와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야기, 몸이 아픈 할아버지를 이십 년 넘게 돌보셨던 이야기.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꿋꿋하게 삶을 지켜온 할머니들 이야기에 웃었다가, 애잔했다가, 고개 끄덕거리며 감동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인사하게 됐다. 한 분, 한 분 살아온 이야기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말이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 내가 이곳에서 농사짓고 마을 학교를 열며 살아갈 수 있다. 강사가 농사짓는 청년일 때도, 자전거 타고 세계 여행을 다녀온 친구일 때도, 장애인과 함께 사는 식구일 때도 있다. 올해도 담쟁이 인문학교를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잘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몰랐지만 사실을 알아야 했던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거창하지 않은 이야기 가운데 묵직하고 커다란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라서 담쟁이 인문학교를 계속 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올해도 담쟁이 인문학교를 통해서 다양한 삶을 만나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지난 십 년 동안 사람이 북적북적할 때에나 뜸할 때나 같은 시간에 학교를 열어 왔다. 올해도 늘 그렇게 이 자리를 잘 지켜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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