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밭에서 풀을 매다보면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 떼가 나올라 악어 떼!”

이사를 하고, 새 땅에 밭을 일구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해보다 풀이 유난히 더 빨리 울창하게 자라난다. 쉬지 않고 낫질을 하는데도 풀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몇 날 며칠 풀을 베고 ‘이제 다했나?’ 하고 돌아섰는데, 얼마 전 풀을 벤 자리에 다시 풀이 가득 자라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을 걸으며 낫질을 하니 팔꿈치, 손목, 어깨, 허리, 무릎…. 아픈 곳이 점점 늘어간다. 내리쬐는 햇볕에 땀을 뻘뻘 흘리고 밭에서 돌아와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모르는 사람 하나가 서 있다. 흙 묻은 손으로 땀을 닦아 낸 탓에 콧등과 볼은 흙칠이 되어 까맣다. 가끔은 그런 내 꼴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난다.

그날도 이른 아침부터 풀을 베고 있었다. ‘고추밭 다하면 참깨밭, 참깨밭 다하면 생강밭….’ 고추밭 풀을 매면서 이미 마음은 다른 밭에 먼저 가 있다. 몇 시간을 꼬박 우거진 풀숲 사이에서 풀을 베어 눕히다가 고랑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얼마 전에 풀을 싹 베었던 곳인데, 벌써 이렇게 자라는 건 너무하잖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식구들이 모두 코로나가 확진되어 며칠째, 만나는 사람 없이 혼자 일하다 보니 마음이 더 지쳤는지 모른다. 

농사짓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돈도 안 되는 일을 이렇게 더워 먹어가며….’ 뒤돌아서면 또 자라 있는 풀을 올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속도 모르고 우리 밭을 지나는 농부님은 명아주 죽이는 약 만드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가셨다.

농사지은 지 아홉 해째가 되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아홉 해 동안 농사지으며 즐거운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이 지쳐 고단한 날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지치기는 처음이다. 씨앗을 받고, 작물을 수확할 가을이 기다려지기보다 그 많은 일을 또 어떻게 해낼까 겁이 난다. 낯선 마음이 찾아와 당황스러웠다. 찬찬히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농사를 왜 짓지?

처음 농부가 되었던 이유를 돌아보면 땅을 일구는 일이 재미있었다. 재미있으니 한 해 더, 또 한 해 더 지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씨앗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기후위기 시대에 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큰 역할인지 알았다. 땅 일구기를 좋아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다면 계속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부라는 자리에 담기는 의미가 더 커졌다.

하지만 그렇게 자꾸 의미와 이유를 담다 보면 내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진 힘보다 그 의미가 훨씬 커져 버릴 때, 무언가에 깔려 아등바등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양산에 있는 대안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절기마다 내가 쓴 시집에서 시를 골라 다 같이 읽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내 시를 외웠다. 나도 다 외지 못하는 내 시를 찬찬히 읽고, 마음에 담아주었다니 고마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내 삶 이야기를 찬찬히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 표정을 보았다.

친구들을 얼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지금 내 삶을 선택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에겐 조금 가벼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소중한 것은 언제나 소중하게 존재한다. 나도 그냥 그 소중한 것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밭을 나서면서 나한테 주문을 외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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