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고등학교에 강연을 다녀왔다. 내 이야기를 쓴 책이 나온 뒤로 강연 요청이 늘었다. 이제 익숙해 질만 한데 왠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농사든, 강연이든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그만큼 나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기 때문일까? 한결같이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 앞에 선다.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농부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늘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모두가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고개 끄덕인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공감 받는 것보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너와 내가 다른 존재라는 의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잘 간직하려고 애쓴다. 

서툴게 전하는 이야기지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다른 삶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에서 “논이나 밭을 본 사람이 있나요?”하고 물어볼 때가 있다.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는 손드는 학생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 농부를 만나본 사람이 있나요?”하고 물으면 그나마 들려 있던 손도 슬그머니 내려간다. “제가 여러분이 만난 첫 농부인 셈이네요. 영광이에요.”하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농사를 짓는 나를 보편적인 농부라고 소개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농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법은 없으니까, 보편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다. 교실에서 처음 만난 농부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농사를 지어 보고서야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수고가 채워져 내 하루가 되고, 내 삶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는 꼭 빼놓지 않는다. 농부는 씨앗부터 밥상까지 과정을 온전히 아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농부가 되어서야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고마움을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이것을 말로 전하는 것과 내가 농사지으며 느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은 꼭 들려주고 싶다. 들어 보지도 못한 이야기와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농부를 만나 본 것과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것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땅을 일구고 지키는 농부가 꽤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강연에서 빼놓지 않는 이야기 가운데 또 한 가지는 ‘상상’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나를 농부라고 소개하지만 ‘상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나는 농부가 되기 전에 씨앗을 뿌리는 상상을 먼저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상상이 좋은 건 어떤 모양이든 괜찮다는 거다. 화려해도, 사소해도, 의미심장해도, 쓸데없어도 상관없다. 되든 안 되든 머릿속에 그림부터 그려 본다. 그렇게 그리다 보면 진짜 해 보고 싶은 일을 만난다. 

새해에도 농부라는 자리에서 펼칠 수 있는 재미난 상상을 가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상상과 내가 일구어가는 삶을 나눌 수 있는 자리도 이따금 생기길 바란다. 여전히 떨리겠지만, 그 만남이 서로 다른 삶을 바라보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 보탬이 될 거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 삶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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