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숲밭을 함께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합천 산골 마을에 모였다. 숲밭을 어떻게 디자인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아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닮은 밭은 만들었다. 동생 수연이와 나는 ‘서와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니 음표 모양으로 밭을 만들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모였다.

글로만 읽어서는 ‘밭이 높은음자리표 모양이라고?’ 갸우뚱하겠지만, 만들어진 모습을 보면 모두가 “오, 그렇구나!” 할 것이다. 시를 쓰는 나를 위해서 시가 찾아올 수 있게 쉬어 가는 공간도 마련했다. 그렇게 우리 숲밭은 ‘시와 노래가 있는 숲’이 되었다. 반짝반짝한 생각이 모인 덕분에 근사한 숲밭을 일굴 수 있었다. 숲밭에는 곧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려면 부르기 좋은 이름이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고민하고 있다. ‘시노래숲’도 좋고, ‘시가 찾아오는 숲’이라는 뜻으로 ‘시오숲’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 더 좋을지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정하려 한다.

어느 가을날에 힘을 모아 숲밭을 만들고, 그다음 날은 숲의 시작을 축하하며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아직 숲밭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서 '서와콩 숲밭 콘서트'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만 노래한 것은 아니다. 산청에 사는 기타리스트 민성, 진안에서 농사짓고 목수 일을 하는 형입, 홍성에서 풀무학교 전공부에 다니는 짱돌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농촌에서 삶을 일구고 살면서 노래하는 친구들이다.

원래는 만들어진 숲밭에서 장터를 열고, 무대를 만들어 공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콘서트가 열리는 날에 사람이 휘청휘청할 만큼 센 바람이 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잠잠해질까 했지만, 도무지 골바람은 그칠 줄 몰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친구들이 공유공간 안에 장터를 열 가판 자리를 잡고, 창고를 멋진 무대로 꾸며 주었다. 마침 새로 짓던 창고가 며칠 전에 완공한 상태였다. 휑하게 빈 창고가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들풀을 꺾어다 꽂고, 커다란 호박을 따다 놓고, 물 조리개까지 가져다 놓으니 농장과 잘 어울리는 무대가 되었다. 재빠른 친구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나는 감탄하며 손뼉 치는 담당이었다.

그렇게 바람을 피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공유공간에서 열린 장터에서는 친구들과 이웃 농부님들이 농사지은 농산물과 손수 만든 우리밀 빵과 음료, 음식을 판매했다. 궂은 날씨에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올까 했는데, 공유공간이 북적북적 꽉 찰 만큼 많은 분이 놀러 오셨다. 이곳에 이사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이었다.

창고에서는 돗자리와 컨테이너 상자에 앉아 노래와 연주를 들었다. 숲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공연할 계획이었던 터라 의자를 따로 준비하지 못했다. 생각과 달리 좁고, 불편한 자리에 초대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모두 즐겁게 공연을 보아주어 다행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맞이하다 보니 하는 것 없이 바빴는데, 친구들 노랫소리에 눈을 감고 귀 기울이는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한자리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어 기뻤다.

우리 차례가 되어 무대에 나갔더니 한눈에 사람들이 보였다.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나타나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하고 내 앞에 앉아 있는 걸까?’ 그 모습이 어쩐지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서툴게 일구어 가고 있는 내 삶을 응원해 주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벅찬 마음이었다. 짓궂은 날씨에 꼼짝도 하기 싫었을 텐데, 이곳까지 찾아와 자리를 채워 준 마음과 정성이 힘이 되었다.

'서와콩 숲밭 콘서트'를 마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다. 숲밭을 만들고, 장터와 콘서트를 열었던 이틀이 꿈처럼 지나갔다. 먼 길을 찾아와 한 삽 거들어준 분들 덕분에 숲밭도 멋지게 만들 수 있었다. 돌아보니 덕분에, 덕분에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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