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얼마 전,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작고 조용한 섬이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나선 여행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가 오면 어쩌나 했던 걱정과 달리 파도는 잠잠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다가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심 곳곳이 물에 잠긴 사진도 보았다.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두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겠구나….’

친구들과 밤바다에 나란히 앉았다. 파도 소리 사이로 들리는 친구들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농사지으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친구가 고민을 꺼내어 놓았다. 다른 대답을 찾아보았지만, 나는 “그러게.”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답을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는 모두 조금은 위태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래사장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를 가만히 보았다. ‘우리가 바라는 안정감이 뭘까?’ 안전한 집이 있고, 농사지을 논밭이 있고, 농산물을 판매할 판로가 있고, 달마다 적당한 수입이 있으면 되는 걸까? 그 조건만 갖추어져도 좋겠다 싶으면서도 무언가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농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작은 규모로 다양한 작물을 심는 농부는 더 그렇다. 우리는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은 같은 의미’라는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농사지어서는 돈 못 버는 거 알고 있죠?”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결국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다양한 씨앗을 뿌리고 거둘 것이다.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바라는 안정감의 기준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닐까? 왼쪽 길을 선택해 걸으면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게 정말 돈이 맞는 걸까?’ 질문이 생긴다.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빼고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아본 일이 없다. 감자 수확하면 팔고, 고구마 수확하면 판매하는 식이다. 원고 청탁이나 디자인 일도 때로는 몰아서 있기도 하고, 한동안 없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껏 잘 살아왔다. 그런 사실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은 싫든 좋든 해야만 한다. 돈을 미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까. 잘 벌어서 잘 쓰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어려운 걸까?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허둥지둥 붙잡아가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내년에 농사짓기가 겁나”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도 그렇다 했다. 해마다 점점 더 날씨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고 보면 농부는 대책조차 세울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음해에는 또 어떤 기후재난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사는 마을은 그칠 줄 모르는 비 때문에 당근, 비트, 양배추 같은 가을 씨앗을 뿌릴 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마을은 감감소식 없는 비와 이어지는 폭염 탓에 심어 놓은 씨앗이 싹 틔울 틈이 없다. 기후위기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해마다 농사가 점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다음해 농사를 겁내는 이 마음이 무섭다.

‘오늘 심은 작물이 우리 밥상에 올라올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씨앗을 받아 다음해에 다시 뿌릴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삶을 일구며 먹고 살 수 있을까?’ 들여다보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알맞은 때에 맞추어 계절이 흘러가는 지구에서 씨앗을 뿌릴 봄을 설레며 기다릴 수 있기를,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긴긴 생각 끝에 닿고 보니 이 불안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우리가 위태로운 이유는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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