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농촌에 청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살 집이 없어 농촌을 떠나는 청년이 많다. 따뜻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우리에게 사치가 아닌 당연한 조건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ㅣ 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지난 3월, SNS에 올릴 글을 임시 저장해 놓고, 며칠을 머뭇거렸다. ‘게시’ 버튼을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올린 글은 ‘서와 작은집 펀딩’이었다.

지지난해에 돈을 빌려 농사지을 땅을 샀다. 식구들과 함께 힘을 모아 산 땅이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땅을 가꾸다가 주인에게 돌려주기를 계속했다. 이제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우리 땅이 생겼다니…. 기적 같았다.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올까?’ 싶었던 시간이 우리 삶이 되어 있었다.

‘서와 작은집 펀딩’은 그곳에 집을 지을 건축비를 모으기 위해 시작했다. 지금 식구들과 빌려 살고 있는 집을 다음 해 2월 말까지 비워 주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독립해서 살아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농촌에서 스스로 서서 살아가고픈 삶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었다.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은행에 가보았다. 하지만 농부인 내가 빌릴 수 있는 돈은 너무 적었다. 더구나 직거래 판매를 주로 하는 소농이다 보니 농산물 판매로 수입을 가지고 있다는 확인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내가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신용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합천 군청에도 찾아가 보았다. 혹 청년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군청에 다녀오고 나면 다음 걸음을 걸어 나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새라도 보일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대와 달리 합천이라는 지역은 아직 ‘청년’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낯선 곳이었다. 하루 내내 여러 부서를 돌아 다녀보았지만, 틈새는커녕 막막한 벽이 더 커다랗게 느껴질 뿐이었다.

농부는 돈과 아주 거리가 먼 자리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갈 때는 지금 버는 돈으로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목돈이 필요할 때면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지지난해 농사지을 땅을 사면서 큰돈을 빌렸다. 그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집을 지으려고 또 한 번 큰돈을 빌리면 내 삶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처음 땅을 살 때 식구들에게 그랬다. “우리가 이 돈을 빌려서 더 소중한 것, 우리 삶에서 정말 지키고 싶었던 것을 잃어야 한다면 우리 땅이 없는 것이 더 낫다”라고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해, 한 해 씨앗 뿌리는 봄을 따스하게 맞이하고 싶다.

농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고픈 청년의 삶에 지원해 주실 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서와 작은 집 펀딩’ 이다. 펀딩을 소개하는 글에 “지원해 주신 돈을 같은 가치의 돈으로 갚기는 어려울 거예요. 어쩌면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돌려 드리지 못할지도 몰라요. 당장 어떤 결과물을 보여 드리지 못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제 걸음에 맞추어 삶을 살아갈 거예요.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면서요”라고 썼다. 돈을 삶으로 갚겠다는 이 펀딩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돈’이란 것도 세상 여러 가치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돈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

SNS에 글을 올리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돈과 관련된 일에는 바라지 않는 마음까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겁이 났는지 모른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세상에 손 내밀어 보기로 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삶을 지켜가고픈 청년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어딘가 있을 거라 믿었다. 다가온 봄처럼 따스한 그런 사람들이 말이다.

조그만 집을 짓고 그 곁에 숲밭을 일구는 상상을 한다. 10평이 조금 넘는 집 설계 도면도 그려보고 있다. 농촌에서 작지만 아늑한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다.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벌이면서 말이다. 작은 집이 생긴다면 합천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재미난 작당을 벌여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 바람이 나에게도, 다른 청년들에게도 너무 이루기 어려운 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촌에 청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살 집이 없어 농촌을 떠나는 청년이 많다. 따뜻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우리에게 사치가 아닌 당연한 조건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마음이 모이고 있다. 응원을 보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마구 떨리던 내 마음을 다독인다. 이웃 마을 농부님은 편지와 함께 서와 작은 집 펀딩을 보내오셨다. “그대의 꿈을 키우는, 어쩌면 숱한 젊은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자연을 닮은 작은집 집짓기에 적은 돈이나마 받아주오. 아무런 조건 없이 드리는 것이니 그냥 받아주오. 그대에게 드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숱한 젊은이들의 행복과 희망을 위해 드리는 것이기도 하오. 그대가 꿈꾸는 일이 하나둘 이루어지기를! 그대를 아끼는 동지 드림.”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너무 큰 사랑을 내 안에 받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늘도 이곳에서 단단하고, 단순하게 살아가기 위한 상상을 한다. 혼자 꾸던 꿈이 함께 꾸는 꿈이 되어가고 있다. 내 다음 걸음에 힘을 실어주는 고마운 마음에 기대어 이 시간을 즐겁게 누리고 싶다. 내 더딘 걸음 뒤에 작은 길이 생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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