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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이 작은 배움터가 마을에 깊은 뿌리를 내려

[한국농어민신문]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우리 마을에서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리고 있다. 이웃 마을에 사는 농부님들과 힘을 모아 함께 시작한 일이다. 어느새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린 지 일곱 해째가 되었다. 담쟁이 인문학교는 청소년부터 60대 어른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산골 마을 작은 배움터이다. 우리 이웃들의 삶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꺼내어 놓고 토론하기도 하고, 강사를 초대해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나누기도 한다. 인문학교에 나오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며 배움터를 꾸준히 일구어 가고 있다.

담쟁이 인문학교를 처음 시작했던 2014년에는 함께하는 청소년이 꽤 많았다.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무 살이 된 친구들은 대학과 취업, 군 입대를 이유로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함께 담쟁이 인문학교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있다. 숫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달마다 산골 마을 배움터를 찾아주는 친구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고, 고맙다.

담쟁이 인문학교에 오는 청소년 가운데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도 있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도 있다. 스스로 학교 밖에서 자기 길을 찾아보기로 선택한 친구들이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열리는 날, 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청소년이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는 청소년기에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걸음을 내딛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학교 밖 길을 선택한 뒤로 내 삶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도시에 살며 논밭 한 번 보지 못한 내가 농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청소년 때부터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에 나는 자연스럽게 농민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질문이고, 내가 내린 답이 하나뿐인 정답도 아니다.

여러 길 가운데 조금 더 내가 바라는 삶과 가까운 모습을 선택해 온 것이다. 질문하며 길을 찾는 나에게 부모님은 언제나 ‘나답게’ 살라고 하셨고, 선생님은 무얼 하든 남보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 설레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런 어른들이 곁에 계셔서 조금 더 용감하게 낯선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 내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이 길을 걸어온 것은 함께 걷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농한기에 보고 싶던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푹 쉬어가고 싶은 계절에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아도 어제 만난 듯 편안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고 들어주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이 피어났다. ‘친구들도 자신이 바라는 삶을 고민하고, 그 삶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구나.’ 무언가 이룬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애쓰며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떨어져 지내도 자기 자리에서 꿋꿋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친구를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도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곁을 나누어 주고 싶다. 청소년기를 지난다고 삶의 방향이나 자립에 대한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도 ‘자립’은 여전히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깃거리다. 자립을 다 이루지는 못했더라도, 어떻게 일구어 갈지 길이 환하게 보이면 좋을 텐데…. 막막한 순간은 자꾸 찾아오고, 해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나이와 달리 저축 통장은 가볍기만 하다. 나도 아직은 내가 바라는 삶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그런 일은 돈이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돈을 잘 버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며, 또 다른 길 하나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내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작은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담쟁이 인문학교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초대해 삶 이야기를 듣는 ‘사람책’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 시간을 통해 청소년 친구들이,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걸 깨달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라고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스스로 부딪히다 보면 버거운 순간이 자꾸 찾아오겠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이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물으며 힘껏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가 정했는지 모를 ‘성공’이라는 기준 때문에 자기 뜻과 상관없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친구가 없었으면 좋겠다. 마을에서 함께 등 토닥이며 바라는 삶을 일구어 갈 친구가 있다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세상도 한 걸음씩 바뀌어 갈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함께 깃들어 있는 이 작은 배움터가 마을에 깊은 뿌리를 내려, 듬직한 나무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나무 그늘 아래, 고민하며 흔들리는 작은 존재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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