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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잃어버린‘씨앗 주권’을 찾아서
   
 

김예슬 청년농부·경남 합천

농부가 되어 가장 행운이라 여기는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내 밥상까지 왔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씨앗 때부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자란 작물인지를 안다. 어떤 마음으로 작물을 대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봄이 되어 지난 가을에 정성껏 말려 모아둔 씨앗 상자를 열었다. 토마토, 고추, 호박, 수수, 가지, 오이, 콩 등 여러 씨앗들이 심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농부가 되고부터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토종 씨앗은 오래도록 우리 땅에 심어온 자연 그대로인 씨앗이다.
농사를 지은 첫 해부터 이웃 마을에 사는 은실 이모가 토종 씨앗을 나누어 주어 받아 심었다. 그 뒤로도 토종 씨앗을 나누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해마다 가지 수가 늘어났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농사지어 씨앗을 받는 일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농부들이 심는 것은 거의 다 일회용 씨앗이다. 필요한 유전자만 뽑아내어 개량한 품종인데, 첫 해에는 수확이 좋아도 그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심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농부들은 해마다 씨앗을 새로 사야 한다, 요즘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GMO와는 다른 것이지만, 농부들이 씨앗에 대한 주권을 잃었으니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농부는 종자 기업이 씨앗을 팔아야만 땅을 일굴 수 있게 되어 버렸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기 위해서 농부가 되었다. 누군가 정해 놓은 ‘이래야 성공한 거지’라는 틀 속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주권을 잃으면 크고 강한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농부가 된 이유를 잃지 않기 위해 토종 씨앗을 심는다. 세상은 모든 것을 더 좋고 더 편리하게 만들어 내는 만큼 모든 것이 똑같아 지게 한다. 더 나은 것을 누리기 위해 끝없이 경쟁해야 하고,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나는 농부로 살면서 있는 그대로 다양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 가고 싶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광화문에서 들었던 100만개 촛불과 GMO 완전 표시제 청원이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국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GMO 문제도 마찬가지다. 농부들은 씨앗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소비자는 우리 가족 밥상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먹는 음식이 내 몸이 되고, 마음이 되어 삶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 먹고 살자하고 하는 일인데 먹고 하자!” 새참 시간이 되면 농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도시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다 먹고 살려고, 행복하게 살아 보려고 일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선택한 것이 자연과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음식이다. 빵, 시리얼, 과자, 라면, 샐러드드레싱, 카놀라유……. GMO 콩, 옥수수, 목화, 유화들은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에 쓰인다. 날이 갈수록 GMO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GMO 작물 수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한다. 하지만 GMO를 표시한 음식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GMO가 아니라는 표시조차 못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기회조차 빼앗긴 채 살고 있다.
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농부인 나한테는 익숙한 풍경이라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농사를 짓고, 텃밭에서 딴 작물로 요리를 하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다. 화려한 액션이 있지도 않고, 대단한 반전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헛헛한 마음을 채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 자연과 가깝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냐는 친구의 물음에 영화 속 혜원은 “배가 고파서”라고 말한다. 농부가 되어 가장 행운이라 여기는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내 밥상까지 왔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씨앗 때부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자란 작물인지를 안다. 어떤 마음으로 작물을 대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기르지 않은 작물들도 있다. 동대 마을에 사는 구륜이네 닭이 낳은 달걀, 상평님이 농사지은 유기농 쌀, 인화 삼촌이 처마에 걸어 말린 바질, 은실 이모가 넉넉하게 자랐다며 나눠 준 당근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웃들에게 나누어 받는 것들도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 알 수 있다. 농부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밥상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당당하고 넉넉해진다는 것을.

나는 농부가 되고부터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여유도 아마 자연에 기대어 흘러가는 시간 덕분일 것이다. 영화 속 재하가 한 말처럼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 몸과 마음이 되는 밥상이라고 생각한다. 씨앗으로 장사를 하는 기업으로부터 우리 씨앗과 밥상 주권을 찾아와야 한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우리 삶이 살아 있는 것들로 채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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