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문득 사람에게도 퇴비장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싶은 게 맞는 걸까? 다른 길은 없을까?’ 잠시 멈추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난 6월에 식구들과 감자를 캤다. 처음 감자 농사를 지었을 때에는 호미로 감자를 어찌나 많이 찍었던지 “이러다가 팔 수 있는 감자가 하나도 없겠다”, “우리가 많이 먹고 좋지 뭐”하면서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이제 감자 농사를 몇 번 지어보았다고 식구들 모두 살살살 감자 잘 캔다. 그래도 흙 속에 보이지 않는 감자를 다 피해낼 재주는 없다.

감자를 캐기 시작하면 “이크, 에이, 아!”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호미에 찍히고, 벌레가 먹고, 크기가 조그만 감자는 우리가 먹으려고 따로 박스에 담았다. 먹기 좋고 보기 좋은 감자는 거의 다 도시로 나가고, 우리가 먹을 못생긴 감자만 창고에 넣었다.

못생긴 감자라도 맛은 정말 좋다.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서 땅심으로 자란 감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농사지은 감자를 드시고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게 똑 내 어릴 때 묵던 감자 맛이네. 감자만 쪄가 먹어도 단맛이 나고, 짠맛도 나고, 고소한 맛도 나고. 비료고 농약이고 없었던 옛날에는 감자가 작고 못 생기도 참말로 맛 좋았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감자보다 달콤한 고구마를 더 좋아했다. 썩 감자가 맛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아, 원래 감자 맛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건강하게 농사지은 감자라 쉽게 무르고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감자를 오래 두고 잘 먹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올해는 상하는 감자가 많았다. 박스에 담긴 감자를 우르르 부어 보았다. 벌레가 먹은 감자는 괜찮은데, 호미에 깊이 찍힌 감자들이 상하고 있었다. 감자를 캐다 보면 꼭 크고 좋은 감자를 호미로 찍는다. 아까워서 담아 두었는데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썩고 있었다. 긴 장마로 습한 날씨도 감자에게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남겨 둔 감자 박스를 다 열어서 다시 감자를 골라냈다. 빨리 먹어야 하는 감자와 두고 먹어도 되는 감자를 따로 나누어 담았다. 다 고르고 보니 상한 감자가 많이 나왔다. 이 감자들도 땡볕에 자라느라 고생했을 텐데, 애써 농사지은 감자를 버리려니 마음이 아팠다.

상한 감자를 한데 모아 거름을 만드는 퇴비장에 넣었다. 그래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여러 음식물과 부엽토와 풀들과 어울려 충분히 발효가 되고 나면 다시 밭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퇴비장에 들어간 상한 감자를 보면서 그랬다. ‘버려지는 게 아니야. 다시 흙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 거야.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지.’

문득 사람에게도 퇴비장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정말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싶은 게 맞는 걸까? 다른 길은 없을까?’ 하지만 질문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사람은 많이 없다. 지금 멈추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충분히 질문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을 익히는 퇴비장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질문하고, 생각을 숙성시켜갈 수 있지 않을까? 상한 감자가 다른 것들과 어울려 다시 땅에 이로운 거름이 되듯이 말이다. 누구나, 언제든지 삶을 질문하고 고민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 실패했다고, 잠시 멈추었다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슬플까? ‘실패’라는 기준조차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닐 때가 많으니 더 불행한 일이다.

조금씩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으로 눈길을 돌리는 청년도 많다. 농촌으로 발길을 옮기는 청년들이 자연처럼 자기다운 색깔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농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채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도시에 살든지, 농촌에 살든지 지속한 가능한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끈임 없이 소비를 해야만 하는 구조가 우리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소박하지만 자기다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기다운 삶을 찾으려면 멈추는 일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정책은 ‘충분히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청년들을 위해서 새로운 정책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청년들 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이 이런 바람을 타고 안전하고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퇴비장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삶을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자유가 피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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