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줄을 서가며 구입한 마스크의 대부분은 도시로 간다. 본인은 안 쓰고는 도시에 있는 자녀들에게 모아둔 마스크를 보낸다. 

농촌은 언제든 좋은 것을 내어준다. 자식 같은 농산물도 헐값에 내어주고, 그 돈으로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 키운다. 소중한 것은 무엇이든 도시로 보냈건만 도시로 보낸 값은 허망하기만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코로나19는 우리 생활 전반을 흔들고 위협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순창친환경연합(영)은 주로 학교급식에 나가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 및 유통하는 일을 하는데 휴교가 길어지면서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힘들다는 말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없는 이유는 이번 바이러스로 인해 훨씬 더 생계가 막막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순창은 아직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원체 사람도 적고, 모임도 적다보니 코로나19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아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보니 마스크 품절 사태도 늦게 체감했다. 도시에서 마스크를 얻기 힘들다고 할 때도 순창의 약국이나 마트에서는 마스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스크를 파는 우체국과 농협마다 긴 줄이 들어섰다. 다시 찾아온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할머니들이 보행기를 끌고나와 마스크 5장을 사겠다고 우체국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코로나19가 아닌 독감이나 다른 병이 올 것 같아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주민수가 작은 지역은 마을 이장님이나 행정을 통해 집집마다 나눠주기도 한다는데, 순창도 그렇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줄을 서가며 구입한 마스크의 대부분은 도시로 간다. 본인은 면 마스크를 챙겨 쓰거나 아예 안 쓰고는 도시에 있는 자녀들에게 모아둔 마스크를 보낸다. 본인이 쓰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 걱정 되서 추위 속에서도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도시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준다고, 마스크를 수소문 하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봤다. 이 모습이 오늘날의 농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 젊은 사람,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간다. 가정 안에서 가장 귀하고 예쁘게 키웠을 자식들이 도시로 가고 난후, 힘들게 농산물 팔아서 번 돈도 자녀 따라서 도시로 흘러간다. 휴원 중인 아이의 돌봄 노동을 위해 할머니는 힘겹게 도시로 가고, 정성껏 수확한 농산물도 따라서 도시로 간다. 지금 택배사무소는 도시로 마스크 보내는 사람들도 북적거리고,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된 후에도 이곳은 수확한 농산물을 보내기 위해 때마다 철마다 북적거릴 것이다.

농촌은 언제든 좋은 것을 내어준다. 자식 같은 농산물도 헐값에 내어주고, 그 돈으로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 키운다. 이처럼 소중한 것은 무엇이든 도시로 보냈건만 도시로 보낸 값은 허망하기만 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밑둥처럼, 황금과 보석을 다 나눠주고 고철덩이가 되어버린 행복한 왕자님처럼 오늘날의 농촌은 황폐하고 초라해졌다. 도시의 급속한 성장 뒤에는 이러한 농촌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남은 것들이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속히 팽창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에오니 이 공간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뭐든지 돈으로 구입해서 소비하기보다는 작은 일상의 것들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가꾸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진 분들이다. 매일 매일은 단순하지만 절기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판단하고, 성실하고 단단하게 일상의 노동을 감내해온 이분들의 삶의 역사야 말로 정말 가치 있고, 누군가가 이어받아야 할 일임을 안다. 

이러한 농촌이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는 같이 고민해야한다. 도시에 다 주고 사람들마저 떠나가면 남은 공간은 그저 생산공장으로만 기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과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농촌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로 지켜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공익직불제나 소농직불금 등 최근 나오고 있는 방안들이 농사짓는 사람들이 남을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인지 회의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도, 이러한 가치를 깨닫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마스크는 도시로 가고, 순창의 주민들은 일상을 산다. 이제 마을에서는 밭을 갈고 부지런한 분들은 감자를 넣고 하우스에는 토마토를 심는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딸기를 따고 쌈채소와 버섯을 수확하고 소와 돼지를 기르면서 봄철을 맞은 일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매일매일 지자체의 긴급재난문자를 받으며, 그 순간에는 잠깐 불안해지지만 코로나19는 멀리 있는 도시의 이야기요 농사일을 당장 목전에 닥친 코앞의 일거리니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금 밭일에 매진할 것이다. 여전히 마을회관은 봉쇄되고 모든 교육과 모임은 취소돼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지 요원하지만, 이걸 결정하는 것 역시 도시의 이야기일 뿐이니, 농촌의 사람들은 묵묵하게 오늘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따뜻한 봄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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