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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수해와 태풍 그리고 추석물가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과연 농가 돕기인지 소비자 돕기인지 헷갈리는 지원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농부가 경험하는 농업과 정책 입안자들이 생각하는 농업이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외딴 섬과 같은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까

최근 수해를 입은 농가의 농산물로 추석 선물세트를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왔다. 너무 좋은 취지이고 감사한 제안이지만 현장을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해를 입었는데, 당장 팔 수 있는 농산물이 나오는 농가가 얼마나 있을까. 진짜 큰 피해를 입은 농가는 당장 이번 작기엔 팔 수 있는 농산물이 없다.

나 역시 피해 농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가 받아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은 하나같이 친환경 농산물 ‘가격할인’에 방점이 찍혀 있다. 평소 판매하던 판매가의 20%를 할인해서 팔면 그 차액을 지원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활성화를 통해 농가를 돕겠다는 취지인데 할인해서 판만큼의 차액을 지원해주는 거라 판매만 많아질 뿐이지 농가 수취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 지원정책의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순창은 친환경 생산자들이 소농 위주로 구성된 데다,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판매할 것 자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할인 판매가 과연 농가에 도움이 되는 지원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가뜩이나 수해로 팔 것도 없는데 ‘많이 팔아 줄 테니 좀 싸게 내 봅시다’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무리 그 뜻이 좋더라도 좀 무례한 제안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친환경 농산물 판촉 지원사업을 우리 법인도 조금 받았다. 겨우겨우 힘들게 찾아낸 몇몇 품목이 지원을 받아 쇼핑몰을 통해 싼값에 판매됐다. 그러나 농가들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같은 지원을 받고 있을 타지역 상품의 판매가격을 참고해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매기다보니 농가 수취가가 높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판매는 많이 일어났지만, 중간에 농가들이 불참하면서 판매가 조기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조금 덜 팔더라도, 더 농가 수취가를 높여서 판매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같은 품목을 싸게 팔고 있는 만큼 해당 쇼핑몰에서는 판매가 안 됐을 것 같았다. 답답한 문제였다.

꾸러미부터 쇼핑몰까지 판매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받아와도, 규모를 크게 키워서 판매를 늘려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유통업자’인 내 생각일 뿐이었다. 농가의 현실은 당장 내일 주문받은 물량이 나와 줄지도 불확실하고, 품위가 많이 떨어져서 클레임이 걱정되는, 근심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원대상이 되는 농가들도 이럴진대 해당 지원을 받기에 어려운 품목을 기르거나,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농가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들은 이미 지원을 받아 저렴해진 농산물과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초기에 꾸러미 사업을 계획하면서 많이 참고했던 농가가 있다. 다품목 소량생산을 하며 몇 년간 꾸준히 정성스러운 꾸러미를 발송해 온 부부인데 이번 코로나19 이후 꾸러미 판매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지원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꾸러미가 많아지자 왜 이곳은 이렇게 비싸냐는 문의도 많이 받고, 판매량도 줄었다는 것이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꾸러미를 꾸리던 부부가 얼마나 서운했을지 글을 읽는 내가 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꾸러미 지원사업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본래 꾸러미를 판매해오던 농가의 판매가 위축됐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규모 수해와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도시에서 농촌에 대해 갖는 관심은 오직 추석 물가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망이 전부다. 이들에게 농촌이란 도시의 식량 공급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농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수해와 태풍 피해도 ‘채솟값이 많이 비싸지는 문제’로 귀결될 뿐이다.

농민에게 직접 지원되는 예산과 관련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과연 농가 돕기인지 소비자 돕기인지 헷갈리는 지원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농부가 경험하는 농업과 정책 입안자들이 생각하는 농업이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외딴 섬과 같은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지난봄 감자돕기 행사 이후로 ‘값싼 농산물’은 내 마음속의 화두로 자리 잡아 점점 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정책을 통해 싸게 만들어낸 농산물’은 당장 피해 입은 몇몇 농가들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이런 행보가 농산물 시장 전체를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농산물 가격으로 대변되는 농가지원은 결국엔 농가지원의 탈을 쓴 도시 소비자 돕기일 수 있다. 정말 어려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원이 무엇일지 농민들의 이야기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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