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어느덧 순창에 온 지 7년이 다 되어간다. 28살에 순창에 내려왔을 때 한 언니가 “설마 20대는 아니겠죠?”라고 부담스럽다는 듯 물어봤을 때, 나는 “저는 금방 늙을 자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의 공약을 착실하게 지켜가며 순창에서 성실히 나이 먹어가는 중이다. 문제는 7년이 되도록 내 주변에는 오로지 언니, 언니, 언니들뿐이라는 것. 이렇게 열심히 늙어가고 있는데도 언니들도 같이 노력하고 있어서인지 동생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3년간 함께 살았던 동생은 올 초에 대전으로 떠났다. 지금은 동계면에 20대 ‘새싹동이’로 불리는, 내려온 지 3년 차가 된 막내가 있다. 이 친구가 유일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청년이 없을 수 있을까. 내려와서 3년간은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청년교육을 맡아 간간이 내 또래도 만나고 동생도 만났더랬다. 그러나 센터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고 영농조합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새롭게 들어오는 청년을 만날 기회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귀농 교육하는 거 힘들었는데, 활동가 일을 안 하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귀농센터 시절에 맺은 관계에서 더 이상 내 관계가 확장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끼리 하는 활동들이 어느 순간 활력을 잃어간다고 느낄 때. 지금은 재미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오고 난 뒤 순창 인구는 10%가 넘게 줄어들었다. 당장 면 단위 학교에는 신입생이 없고, 내 주변에 새로 들어오는 청년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실이 힘들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점점 사라지는 지역을 마주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올해 무리인 걸 알면서도 일을 벌였다. 순창 언니들과 함께 도시 청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귀농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올해 우리가 받은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시범사업으로서 20~30대 여성 청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귀농·귀촌 탐색 교육이다. 연고 없는 도시 청년들에게 지역에 아는 언니 하나 만들어 준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청년 여성들이 농촌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도시 청년 여성들을 잘 환대해줄 수 있는 언니 공동체가 탄탄하게 마련돼 있었다.

바쁜 중에도 틈을 내어 공모사업을 준비했고 선정이 되었다. 우리는 언니들과 함께 청년들을 환대하기 위한 워크숍을 하고 홍보를 시작했다. 청년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안 하던 인스타도 공부해가며 배우고 홍보물도 만들었다. 그렇게 올해 30여 명의 도시 청년 여성과 만났다. 도시 청년들은 일주일간 순창의 언니 공동체를 탐방하고, 본인의 관심사에 맞춰 소그룹으로 개별 언니가 사는 공간에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냥 교육생과 강사로 만나고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지역에 친한 언니 한 명을 만들어 주고 싶은 교육이었기 때문에, 일정마다 공을 참 많이 들였다. 무엇보다 언니들의 도움이 컸다.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언니들은 먼저 나서서 참가하는 청년 여성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만나는 시간이 아닐 때도 시간을 내어 청년들을 만나러 오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등 마음을 다해 환대해주었다.

이전에는 농촌에 오고 싶어 하는 도시 청년 여성이 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청년이 농촌살이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건, 생태지향이라는 가치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진지한 청년들이 많았고 비혼 여성들도 많이 만났다. 이들의 진지한 고민을 들으며 내 안에 정립되어 있던 도시 청년 여성상을 새롭게 세워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순창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다. 순창 토박이인 한 언니는 처음에는 ‘청년 여성이 혼자 와서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언니들이 함께 도와주면 청년도 내려와 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본인의 생각을 바꾸었다. 농사도 잘 짓고 생각이 확고한 언니였는데, 언니가 그렇게 말해준 것이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한 귀농한 언니는 “우리도 한때는 도시 언니였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창으로 올 수 있게끔 손잡아주고 함께 해준 언니들 때문임을 다시 느끼게 됐어”라며 공동체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역의 언니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환대하면서 또 다른 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기회가 됐다.

바쁜 시기에 나를 갈아 넣는 것만 같은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던 교육을 해봐서 좋다. 이번에 만났던 청년들이 얼마나 순창에 정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청년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본다. 지역의 상황은 점점 더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겁게 해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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